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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05일
Geheimnis. An Franz Schubert (The secret. To Franz Schubert ) D.491 Tell us, who teaches you these songs, so flattering and so tender? They call to mind a heaven from the troubled Present. First the land lay veiled in mist before us; you sing, and the sun shines and Spring is near. The old man crowned with reeds who pours out his urn you do not examine; only the water that flows through the meadows. So it goes too with the singer: he sings, inwardly astounded; what a God has silently created perplexes him as well as you. ( by Mayrhofer) * 어디서 읽었나 가물가물 한데, 이반 일리치가 '소통' 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란, 상대방의 눈을 보고 해야 한다 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상대방의 존재를, 그의 반응을 즉각즉각 살피며, 그의 기분까지 세심히 살피며 마음을 나누는 것이 대화라 했던가... 그는 옛 수도승들이 서로 교환한 편지를 인용하면서 "요즘 세상에 남자들이 이런 편지를 서로 주고 받는다면 사람들은 아마 'gay' 라고 비난할거에요" 라고 말했다. 자동차가 발명된 이후로, 인간은 '길' 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던 기억도 난다. 병원이 생긴 이후로 사람들은 '치유' 를 잃어버렸고 학교가 생긴 이후로 '배움' 을 잃어버렸고 그놈의 컴퓨터가 생긴 이후로는 '대화' 와 '소통' 을 잃어버렸다고 말이다. 다른 부분도 그렇지만, 소통만 놓고 보자면 그의 지적은 적절하다. 인터넷 안에서, 그 누가 상대방을 생각하며 자판을 두드리겠는가. 자기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기 바쁘고, 내 생각을 토해놓기 바쁘다. 그 누구도 상대방을 지긋이 들여다보며, 눈빛을 보면서, 정중히 의견을 교환하지 않는다. 존대말을 쓰고 실명을 써도, 비아냥과 빙글 빙글 사람 놀리는 일이 일상화 된, 기본적으로 인터넷이든 현실에서든, 타인과의 대화(소통)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어떤 따뜻한 사회를, 가치있는 사회를 <함께> 구축할 수 있을까? 소통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은 자신 안의 분노를 표출하고 싶을 뿐이고 답답함을 토로하고 , 스트레스를 풀어보고 싶을 뿐인 건 아닐까. 인터넷이 없다면, 그 스트레스들을 풀 곳이 없는 사람들은 아마 진작에 다들 거리로 뛰쳐나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 이반 일리치가 예로 들었던 중세의 수도사들의 편지는,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신뢰, 존중으로 가득차 있었지만 사실 읽는 내내 좀 웃음이 나오기는 했었다. 그의 말처럼, 남자 둘이서 그런 연애편지스러운 글을 주고받는다는게 우스꽝스러웠달까. 예전에 퇴계와 고봉의 편지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었다. 킥킥 웃기까진 아니었지만, '비 현실적' 인 대화방식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상대방을 성심 성의껏, 진심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개념이, 구체적으로 형성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아, 저런 방식으로 논쟁하며 살았었구나' '저런 방식으로 대화를 했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어도, 심정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그런 관계를, 타인과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탓이다. 슈베르트의 이 곡 가사를 처음 봤을 때도 , 나는 사실 한참을 푸하하, 웃었었다. 서른을 바라보고 있던 시인 Mayrhofer, 열 살가까이 연상인 이 청년이, 새파랗게 어린 동생을 향해 쓴 시 구절은 있는 그대로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경, 으로 받아들여지기 이전에 어찌나 '닭살스럽고 간지럽고 머쓱함' 으로 먼저 다가왔던지... 웃음을 거둘 수가 없없던 것이었다. 네가 노래를 부르면 이 암울한 세상이 환하게 밝아진단다, 도대체 누가 너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쓰는 걸 가르쳐 주었니? ....라니... 시작부터 약간 묘하게 닭살스럽거니와 전반적으로 '대놓고' 말하기엔 너무 지나친 찬사들 아닌가? (그런 탓에 이 시를 동성애코드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은 이 시인은 이보다 더 한 시도 썼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시를 읊어준다면 어떨까? 나는 머쓱함 없이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고마워하거나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 후대의 몇몇 사람들은, 이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관계였다고 수근거리기도 했고 여전히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은, 가치판단으로서의 '동성애' 운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가치판단으로서의 동성애가, 누군가에게는 <더러운 녀석들>, 이라서 음악 듣기도 지저분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 작곡가의 곡에는 꼭 그와 관련된 불편한 언어들이 아직도 따라붙곤 하고, 동성애인지 아닌지를 규명하는 일은 그의 전기에서 꽤 무게감있게 다뤄'져야 할' 소재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어쩐지 그가 동성애자가 '아니어야' 그의 음악이 좀 더 격상될 것처럼.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왠지 그 부분을 빼버리면 덜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침대 속의 그의 private life 를 캐는 일 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그의 모습은 동시대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했고, 동시대 시인들의 작품들을 주저없이 가져다가 쓸 수 있었던, 그 어떤 음악가들보다도 풍부한 그 '사귐' 의 측면이 아니었을까? 슈만은 슈베르트의 문학 텍스트를 보는 안목에 대해 꽤 부정적으로 보곤 했지만 나는 그가 만들어낸 현재 진행형의 예술 - (친구의 시를 가져다 곡을 붙이고, 함께 노래하고 의견을 나누던) 에 꽤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슈만의 말처럼 문학 텍스트를 보는 안목은 좀 떨어졌을 지 모르겠지만, 슈베르트만큼, 창작 주체로서의 '시인' 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음악을 붙여가며 재창조를 한 작곡가도 흔치 않을 것이다. 심지어 그의 말년에 작업했던 seidl 같은 시인은 그보다 7살이나 연하의 한창 새파란, 풋내기였고, 명성은커녕 데뷔도 변변히 못하던 청년이었다. 그걸 어떻게 가져다 쓸 수 있었을까. 슈베르트의 노래들은 그렇게 '관계' 속에서, 직접적인 '소통'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싱싱한 생각과 감정들을 가지고 바로 만들어 낸 신선한 음식처럼 존재한다. 친구들에게 새로운 곡을 들려주고, 그 반응을 듣는 일을 즐겼다던 이 작곡가는, "이 곡 정말 괜찮은데?" 라는 말만 들으면 그냥 가져가라고 줘 버리는 일이 허다하여 여러 친구들에게 흩어진 악보들을 모으는 일도 만만찮은 일이었다고 하던데, 어쩌면 그가 진정 원했던 것은,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근사한 콘서트를 여는 일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음악과, 문학과함께 소통하며,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주면, 뒷켠에 서 있다가 늘 양 손을 볼에다 가져대고 수줍게 웃거나, 혹은 손바닥을 비비면서 "오늘에야말로 내가 사람들에게 참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라고 친구들 귀에 속삭였다던 ...... * Gluck과 Mozart의 팬이었고, 노래부르는 일과 기타치는 일을 즐겼다던 시인 Mayrhofer는 즐기던 음악적 취향과는 달리 정서가 남달리 (병적으로)우중충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Bauernfeld 및 주변 친구들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슈베르티아데 모임에서도 마치 비석처럼, 그저 한켠에 우두커니 서있곤 했던, 비 사교적이고 말도 별로 없는데다가 꽤 진지하고, 진지함을 넘어 도가 지나칠만큼 심각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지는데, 깊은 절망과 고독으로 가득했던 이 시인이 오직 한 순간 눈을 반짝이며 깨어있을 때는 젊은 슈베르트의 노래를 들었을 때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막 서른을 앞두고 있던 시인은, 막 스무살을 바라보던 젊은 작곡가의 노래 속에서 일종의 healing power를 느꼈고, 슈베르트가 노래를 붙여주었을 때만 나의 시가 살아난다,고 했다고 하니, 아마도 그는 이 어린 청년을 꽤나 존경하고, 존경을 넘어 사랑했던 것이 분명하다. Usually he(Mayrhofer) sat there mute and dull, like the stone on a grave. this countenance was serious , stony, He never smiled or joked. He spoke little - what he said was weighty only music could at time release him from his mute stiffness, and his whole being was transfigured when he heard the song of his Schubert - Bauernfeld 그는 어린 친구에게 이 시를 헌정하고 그 해 가을, 어린 친구는, 그가 헌정받은 그 시에 곡을 붙인다. 아주 명쾌하게 (민망할정도로?)직설적인 시 구절도 그렇지만, 그 시를 받아들고, 머쓱함도 없었는지, 소박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화답하여 다시 헌정한 그네들의 마음 앞에 단순히 킥킥거리는 내 단순함과 가식적인 고상함이 더 우스웠달까. 시인이 만들어 낸 명쾌한 시와, 그것에 화답하는 작곡가의 단순한 멜로디 속에는, 서로를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그러나 확신 속에서 따스하게 아끼고 사랑하고 있음이 보여서 키득거리던 것을 거둔 이후로는, 그네들이 부러워졌다. 누군가를 오롯이 인정하고 존중하고, 칭찬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그 것, 나이도 성별도, 지위도 상관없이 감동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그 애정의 근원 나에게는 도무지 찾으려 해도 찾아지지 않는, 마치 멸종된 지 오래된 것 같은 마음이기에.... 부러웠다는 것일게다. 비아냥과 비난, 남을 깎아내려야 내가 올라가고 남을 멋지게 논박해야 유능해 보이는, 심지어 취미생활에도 고수와 하수를 나누는 지금의 세상에는 도무지 찾아보기 힘든, 시선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기도 했을 것이고 친구( 親舊 -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 라는 말 보다는, 지인( 知人 - 아는 사람) , 이라는 말이 더 넓게 쓰이는 것이 아직도 적응이 잘 되지 않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 Der Gondelfahrer (D.809) 그렇게 끌렸던 시인과 작곡가는 이후 3년간을 함께 살게 된다. 매일 아침 5시 반이면 일어나서 오전 내내 작곡을 하고,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는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고 저녁에는 모임에 가곤 했다는, 제법 건강한 시절의 젊은 슈베르트의 일상은 그렇게 어둠컴컴한 정서의 시인과 함께한다. 주변 건물로 인해 늘 어둠컴컴한 그네들의 집을 따스하게 만들었던 것은 시인이 시를 쓰고, 그 시를 받아든 어린 작곡가가 노래를 만들어내던 순간들이었다고, 그 순간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Mayrhofer 는 친구의 죽음 뒤에 글을 남겨놓는다. 그러나 3년 뒤 제 갈 길을 가게 된 이 두 사람이 이후 소원해진 이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지독하게 우울한 정서와, 괴상한 유머, 까탈스러움을 지닌 시인과, 천성이 오히려 낙천적이고 순하고 수줍음을 타곤했던 어린 작곡가는 일상 속에서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종종 다투곤 했다 하고, 동성애자임이 확실한 이 시인과 어린 작곡가가 종국에는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린 것을 그네들의 성 정체성에서 찾는 사람도 있지만 그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친구들 앞에서 그들은 서로의 예술과 인격에 대해서는 늘 가장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3년간을 함께 살았던 이 시인과 작곡가의 관계가 냉랭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1824년, 슈베르트가 세 곡의 노래를 작곡해서 그에게 헌정한 것도 그렇고, 슈베르티아데 모임에 역시나 가끔 얼굴을 비추어, 한켠에 기대어 끊임없이 슈베르트의 노래를 불렀다는 시인을 보면 그네들이 서로를 잊지 않고 있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는 슈베르트가 괴테 다음으로 가장 많은 곡(50여곡)을 붙인 시인이고, 대부분의 노래들은 그들이 서로 친밀한 관계일 때 만들어졌지만, 두 사람이 제갈길을 가게 된 이후로도 슈베르트는 옛 친구의 시에 곡을 붙이는 일을 중단하지는 않는다.. * 병을 얻은 작곡가가 그의 친구 Mayrhofer의 시에 마지막으로 붙인 노래는 독창곡이 아닌 남성 합창곡 Der Gondelfahrer (D.809) 이다. 슈베르트는 마치 그네들이 처음 만났던 그 순간, 병도 없고 아픔도 모르던 젊은 그가, 이 고독한 시인에게 주었던 그 손길을 마지막으로 다시 내밀듯이, 한없이 꿈결같고 사랑스런 발걸음으로, 시인의 시에 마지막으로 노래를 붙이고, 그것은 그렇게 옛 친구를 향한 마지막 선물이 되어버린다. 얼어붙은 땅에서 발견한 것이 죽어버린 새일 뿐, 이라고 노래하던 이 암울한 시인, 죽은 친구와 함께 나도 날아가버리고 싶다고 펜을 움직인 이 시인을 마치 미리 다독이듯이. 병도 없고 슬픔도 없는, 세상에 걱정할 일이 없는, 그 어떤 곳으로 향하는 듯. 그의 시에 화답하며, 그렇지, 그렇지, 그렇게 박자를 맞추듯, 출렁이는 리듬으로, 혼자가 아닌, 무리들의 목소리로, 힘겨운 인생 속에서도 그들을 살게 만들어주었던, 사람과 사람의 목소리로 그렇게 아름다운 음표들로 오선지를 가득 채워놓았다. '함께여서 행복했던' 그 친구들은 그렇게 남자들의 목소리만으로 울림이 되어 남았다. .................... 주변 건물들로 인해 늘 어둠컴컴했던 그네들의 집을 따스하고 밝게 만드는 것은 시인이 시를 쓰고, 작곡가가 곡을 만들어가던 그 순간들이었다고, 그 순간들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라고 썼던 이 시인은 그 순간들을 잊지 못한 채 죽었을까? 슈베르트의 죽음에 꽤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던 이 시인은 도나우 강물에 한 번 몸을 던진 것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결국 자신의 오피스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 (순진하게도) 소통을 바라며, 가끔 자판을 두들기다가, 나는 지금,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누구에게 분노하고, 누구에게 끌리고, 누구에게 동의하고 있는 것일까? 싶어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시선을 돌린 곳에 '사람' 대신 모니터가 놓여있음을 자각하는 순간만큼 허망할 때가 또 어디 있을까. 우리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을 놓쳐버린 그 순간, 서로를 숨소리를 듣고, 서로의 반응을 살피는 것을 잃어버린 순간, 그 곳에 소통을 향한 문은 이미 반쯤은 닫혀버린 게 아닐까. 동성애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가 나는 그저 그들의 나눔이, 나눔 속에서 만들어낸 예술이 한없이 부러워질 뿐이었다. 그의 음악 속에 들어있는, 따스하고 긍정적인 구석들은, 아마도 그가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았던, 타인을 바라보던 그 눈동자, 그 시선 때문이었을 것이다. The moon and stars dance a fleeting, ghostly round: Who would, to earthly cares, be forever chained? You can, in the moonbeams, now drift, my boat; and be rid of all barriers, cradled in the bosom of the sea. From St. Mark's tower tolls the proclamation of midnight: All slumber peacefully and only the boatman is awak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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