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2일
서른 넷 생일

서른 네 살의 생일을 맞으면서 잠시 생각해보니 벌써 삼십대가 반절 가까이 지나고 있다.
무얼 했는가 떠올려보니 떠오르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앞이 깜깜하다.
어쩌면 20대의 반대방향으로만 줄창 달려온 것은 아닐까.
많은 것들에 도리질을 친 채로 그저 주먹을 쥐고 달려왔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저 황망한 20대의 반대방향으로만 질주한 나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자축하는 의미로는 좀 이상하지만, 하릴없이 손을 오그렸다 폈다를 반복하다가, Schubert 의 Winterreise 를 쳐본다. 
내 옆에는 노래 불러주는 사람도 없어, 그저 혼자 피아노를 두들기고 있는데도, 노래는 그렇게 내 마음 속으로 흘러간다.
그리고,그렇게 마음 속으로 흘러가는 노래가, 마지막이 아닌 마지막 인사가, 상실에서부터 출발하는 그 노래가
그렇게 나를 다독인다. 언제나처럼.






......Schubert / Winterreise D.911, "Gute Nacht" sung(?) and played by me










서른 넷 생일 선물로는 공연 티켓 두 장. (....... 올 11월과 내년 4월 공연 티켓이니 생일 선물이라기엔 왠지 좀.......--;)

티켓 가격보다도 기차운임과 호텔비가 더 들 것이고, 그것이 아까워서 밥도 제대로 못 먹을 것이다. 서러버라....
언제나처럼, 그깟 공연 하나 보겠다고 처절하게 짐 싸서 혼자 훌쩍 다녀오겠다는 마누라를 위해
아들녀석들을 두말 없이 맡아서 봐 준다는 남편에게는 고맙다는 말 이외에 뭐라 말하겠는가.

..... 다음 생에도 같이 삽시다.



by 그림자놀이 | 2009/10/22 12:35 | 낭만주의자의 취향 | 덧글(15)
Commented by Eiren at 2009/10/22 12:48
생신 축하드립니다..행복한 하루 되셨으면 합니다. 서른 넷이라시지만 스무살처럼 피부도 고우시고 아리따우시네요^^
그 동안 올려주신 좋은 음악 몰래 잘 듣고 갔는데 이렇게야 인사드리네요..
베를린 필, 저도 예약했어요..브람스3, 4번 교향곡이 연주될 작은 도시 앤아버로 들으러 간답니다^^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10/22 12:55
매년, 생일관련 포스팅 올릴 때마다 '생신' 이란 단어에 저으기 상처받고 돌아갑니다만... --;.....
'스무살처럼' 이후 문장으로 대충 마음 추스릅니다. ^^;;

브람스 3,4번이라니, 부럽네요. 시카고에선 2번 하나만 달랑, 이거든요. 아무래도 싸늘한 늦가을엔 3,4번쪽이 더 좋을 듯 한데 말이죠.
앤아버엔 좋은 공연 많이 하는 것 같더군요. 좋은 도시 같아요.
Commented by CelloFan at 2009/10/22 13:35
생일 축하드립니다! 생일선물로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의 공연이라니, 음층 부럽습니다. 나중에 후기 꼭 올려주세요!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10/22 15:26
마구마구 작정하고 가는 공연이 아니라, 미치고 환장하게 바빠서 숨통좀 트려고 가는 공연이라... 별 기대는 안 하고 갑니다.
브람스 팬이긴 하지만 래틀의 팬은 아니기도 하고....호텔방에서 혼자 자는 것도 이제 별로 재밌지도 않구요.
그냥 베를린 필 소리를 언제 또 들어보겠나 싶어서 가긴 갑니다. ^^ 근데 생각해보니 래틀은 오히려 브람스 2번을 잘 연주할 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Commented by chungsuk at 2009/10/22 13:44
아아, 생일 축하드립니다. 저도 폴리니 티켓 받았습니다 ;)
Commented by CelloFan at 2009/10/22 13:46
미쿡에 계신분들, 너무해요 T_T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10/22 15:27
티켓 날아오면 기분 정말 좋지 않나요? ^^ 전 우체통에서 저 얄상한 티켓 받을 때가 젤 기분 좋습니다. 일찍 사셨으니 저보다 좋은 자리에 앉으시겠네요.
Commented by cleo at 2009/10/22 15:13
저도 오늘 아침에 '겨울나그네' 들고 나왔어요.
첫곡, 'Gute Nacht'을 들으면서 우리동네 가로수길을 달리니,
왠지 먼 길 떠나는 사람처럼 비장해지더군요. -.-

티켓을 든 손이 너무 고우세요. (티켓도 부럽고, 자그마한 손도 부럽습니다. )
저 손으로 피아노를 치면 아주 섬세한 소리가 날 것 같은데...피아노 치는 모습 보고싶네요.
생일 축하합니다...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10/22 15:31
신체 부위 중에서 그나마 젤 자신있는데가 손이긴 한데, 작아서 피아노 치기엔 안좋습니다. 겨우 옥타브 짚어요.
섬세함은 개뿔이고 연습할 시간도 없으니까 그냥 엄벙덤벙 제 멋에 칩니다. 그럼 좀 살 것 같아서요. ^^
생일은 저번 주에 지났는데, 애들만 피자에 케잌에 신나게 먹었습니다. 그거 뒤치닥거리하고 앉았으니까 제 생일인지 뭔지도 모르겠더라구요. ^^
Commented by 개구리 at 2009/10/23 14:58
생일이셨군요. 축하 드립니다 :D
그래도 아직 꺾어지기 전이시니 청춘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

그나저나...
행복해야할 생일날에 "Gute Nacht"라니...
보통 이런걸 "청승"이라고 하지 않아요? :D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10/23 16:54
제가 원래 '청승' 전문가인데 이정도는 뭐 청승 축에도 끼지 않습니다. ^^*

Gute Nacht 후반부의 꿈결같은 장조 코드를 만나면, 한없는 위안과 용서, 아픔 속에 깃든 사랑의 힘을 만나곤 하니, 청승보다는 오히려 축복에 가깝지 않은가 싶어요.

그나저나 꺾어지는 나이가 서른 다섯인가요? 저는 스물 다섯으로 알고 있어서 이미 오래 전에 꺾어진 줄 알았습니다만. --;;
Commented by 개구리 at 2009/10/25 16:04
요즘 한국의 평균 사망연령이 80세가 넘었습니다~^^
그러니 마흔은 되어야 꺾어지는게 아닐까요?
스물 다섯에 꺾어진다면... 좀 슬퍼요~ :D
Commented by Levin at 2009/10/27 19:47
제 생일 지나고 며칠 후면 그림자님 생신이셨죠! 저는 이번에 제법 즐거운 생일을 보냈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10/27 22:29
안그래도 저도 레빈님 생일이 요 근방이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소식이 없으시길래 궁금해 했었는데 좋은 집으로 이사하셨더군요.
제법 즐거운 생일, 이라면 혹시 좋은 여성동지와 함께하신 겁니까??
Commented by Levin at 2009/11/01 16:31
어머, 여성동지만 있었던건 아닙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