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0일
기억의 저편 / Schubert Standchen D.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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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한 살, 인생의 마지막 해에 슈베르트는 두통과 더불어 심각한 건망증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중요한 일들도 종종 완벽하게 잊어버려서 사람들을 곤란하게 했다고...

흔히 알려진 것처럼 슈베르트가 평생 '무명' 이었던 것은 아니었는데다가
당시에는 빈에서 꽤 유명한, 인기있는 작곡가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었고,
뮤직 소사이어티의 정기 연주회에서도 베토벤이나 하이든의 곡들을 제치고
당시에 정기적으로 가장 많이 연주된 곡이 슈베르트의 곡이었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 해에는 기존의 친구들은 물론이거니와 당시 유명한 전문 연주자들과의 교우도 활발하여
늘 카페에서 그들과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슈베르트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채 1년도 남지 않은 삶을 예감하지 못했던 그는 그들과 수많은 것들을 계획하고,
자신의 이름을 오스트리아 밖으로도 알리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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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높아진 유명세 때문에 갈수록 연주회도 잦아졌고, 후원자들의 파티 초대도 자주 있었는데
슈베르트는 그 약속들을 거의 대부분 잊어버려 얼굴을 비추지 않았고
심지어는 얼굴을 비추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의 말도 전하지 않아서
'예의를 모르는 자' 라는 비난 속에 결국 후원자들이 하나 둘씩 등을 돌리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도대체 저 인간이 왜 저러나 싶어 보다못해 찾아나선 친구들을 어이없게 만든 것은
그가 그 모든 약속들을,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새하얗게 까먹고 있었다는 점.

슈베르트 본인은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 카페에 앉아있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기 일쑤였고
친구들이 온 동네 뒤져서 그를 찾아 오면,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눈빛을 한 채 
"그랬었나?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네..." 라고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는데...

문제는 그 다음 약속 역시나 "아, 그랬었던가? 까맣게 잊고 있었네..." 라는 반응의 연속이었다는 것.



***
중요한 연주회에 얼굴을 비추는 일도,
자신의 곡이 한가득 연주되는 파티에 참석하는 것도
완전히 잊어버린 채 산책을 하고, 카페에 앉아있곤 했던,
그렇게 많은 것을 새하얗게 잊어버렸던 그는
그 모든 것들 다 잊어버렸기에 그렇게 많은 음악들을 그 한 해동안 쏟아냈던 것이었을까?

이 곡 역시나 
헌정자를 애타게 만든 '건망증'으로 얼굴을 비치지 못한 채 공연이 되었고,
이후에 열린 semi -private 연주회에 초대받았으나, 결국 나타나지 않은 그를, 친구들이 온 동네 뒤져서 찾아내었다고 전해진다.
역시나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는 모든 것을 까맣게 잊은 채, 앉아있었더라는.....

그렇게 끌려가서 자신이 작곡한 곡을 처음 듣게 된 슈베르트는, 
"Do you know , I had no idea it was so beautiful" 이라 말했다 하니,
그의 머릿 속에는 무슨 생각들로 가득했을까.

초연은 꽤 성공을 거두었고, 이 곡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열렸던 public concert(1828.3.26)에서도 공연된다.


****
듣다보면, 지상도 하늘도 아닌 어떤 중간, 
모든 것이 다 잊혀진 환상 속의 공간을 배회하는 그의 발자국들이 보인다.
모든 것들을 다 잊어버린 채 , 그는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었을까.

브람스도 그러하지만 슈베르트가 사람의 목소리를 다루는 것을 듣다보면 그 다정다감함에 마음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말없이 그냥 그네들의 손을 잡고 숨소리를 듣고싶달까.

그러나 슈베르트의 '목소리' 는 그 따스함 너머로, 
짐짓 잡을 수 없는 지점에 환영처럼 서 있을 때가 있다.
모든 것을 새하얗게 잊어버린 채 앉아있곤 했다는, 그런 모습처럼.





 Hesitantly quiet
 in the dark of the night's stillness,
 we are here,
 and, our fingers softly bent,
 gently, gently
 we knock
 at the beloved's chamber door.

 And now growing,
 swelling, swelling,
 with one combined voice, loudly
 we call with confidence;
 don't sleep
 when the voice of love speaks!

 A wise man once looked near and far
 with a lantern for true human beings;
 how much more rare than gold
 are those people whom we like and find lovely?
 So, when friendship and love speaks,
 my friend - my love - don't sleep!

 But what of all the riches 
 could be as valuable as sleep?
 So instead of words and instead of gifts
 you should now also have rest.
 Just one more greeting, one more word;
 then the wise, joyful man is silent.
 Quietly, quietly,
 we steal away - yes, we steal away again!



by 그림자놀이 | 2009/10/20 21:47 | 낭만주의자의 취향 | 덧글(9)
Commented by cleo at 2009/10/20 22:11
이 곳을 알고 부터는 새삼 슈베르트가 마구 좋아지려고 합니다.
아마도 그림자님의 멋진 해설과 곁들여 음악감상을 할 수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전 슈베르트의 피아노곡들은 들은게 별로 없지만, '겨울나그네'를 젤 좋아합니다.
가사를 보지않고 듣기위해 빌헬름 뮐러의 시를 거의 외다시피 한 적도 있었어요.

언제 한 번 시간을 내서 여기 있는 곡들 다 들어보고 싶어요...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10/21 12:12
외롭고 힘든 이방인의 생활을 지탱해 준 것이 아마 슈베르트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쓸쓸함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또 지루하게만 다가올 수 있기도 하겠다 싶기도 한데....... 저에겐 제법 코드가 잘 맞는 작곡가인 듯 해요.

겨울나그네는 저도 10대때부터 무지 좋아하는 곡입니다. 생각해보니 독어가사를 다 한글로 적어놓고(들리는대로 받아적어서 ^^;;) 술 취하면 가끔 피아노 치며 노래를 부르던 때도 있었네요. 푸핫..... 그러구보니 알게 모르게 슈베르트와 쓸쓸한 시절과는 제법 인연이 오래되었던 듯.
Commented by cleo at 2009/10/22 12:11
그런 술주정이면 주변사람들 너무 즐거워할 거 같아요.
저도 술 취해서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고 싶은데...술도, 피아노도, 노래도 잘 못해요. -.-:

'춤'은 잘 춰요...ㅎㅎ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10/22 12:40
주변 사람 앞에서 어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 술취해서 피아노 치면서 왁자지껄하게 둘러앉아 쟁가나 민요같은 거 불러 본 적은 있지만,
Winterreise는 은밀하게 혼자서만 부르곤 했지요. 그걸 누가 좋아하긴 하겠습니까. 사실 가사를 못 외우기도 하거니와 음정도 안 맞구요. 허밍으로 때우며 괴괴한 노래가 되어버리는지라.... --;;
Commented by Levin at 2009/10/27 19:49
저는 술하나는 잘합니다...

그림자님 '때문에' 슈베르트를 더 자주 듣게 된 사람이라 끼어들어 봅니다 :>

그래도 가곡은 역시 무리...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10/27 22:28
슈베르트가 저 칭찬해 줘야겠어요. ^^;;

전 인생에 마실 모든 술들을 아마도 20대 초반에 다 마셔버린 것 같아서.... 요샌 잘 안받더라구요.
Commented by 개구리 at 2009/10/21 16:52
똑같은 곡들도, 어째서 여기에서 듣는 느낌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림자놀이님의 감상포인트를 공유하면서 듣기 때문이 아닐까싶기도 하고... :D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10/22 12:05
아무래도 글은 사람은 현혹하니까 그렇게 들릴지도 모르겠어요.
저야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라 의도적으로 그렇게 타인을 현혹하고 싶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만 말이죠. ^^
Commented by cleo at 2009/10/22 12:13
그림자님 여기 계시나요?
덧, 답글 달린 시간이 비슷해서...반가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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