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23일
슈베르트와 뽕짝
*
남편을 이 곡을 듣더니 '뽕짝같다' 고 하였다.


그 말에 충격이 커서 연습하던 손가락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아.. 다른 표현도 많은데 하필 왜,,,,,,,,,,,,,,,,
하필 왜, 내가 치는 걸 듣고서!!!!


그 말의 뉘앙스가 너무도 강력한 나머지 
이후로 이 곡을 칠 때마다 자꾸만 뽕짝리듬을 타게 되고, 감정을 잡을 수가 없어서 꽤나 고생하였다.


물론 그 표현이 처음은 아니었다.
남편은, 이전에도, 내가 슈베르트의 D.958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을 치고 있을 때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어, 이 곡 뽕짝같은 느낌이 나네?"


그는 그래서 슈베르트의 이 두 곡이 친근하다며, 그것이 나름 '꽤 좋다는 표현' 이라고 주장하고
나도 그의 진심을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여보.
내가 서른 넘은 이후에,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의, 개중 좋아하는 곡마다
뽕짝 같다고 말을 해 버리면, 어쩌란 말이오.




**
짦고 단순한 멜로디들 속에는 참으로 다양한 표정이 숨어있기도 하거니와
악상기호는 역시나 슈베르트답게 정말 치기 어렵게 붙어있다.
느닷없이 커지고, 느닷없이 약해져야 하고, 리듬을 타고 몇 몇 음표에 느닷없이 강세를 주는 것도 여전하다.
그것들을 다 지켜가며 치는 길은
현실의 문을 닫아버리고, 완전히 '몰두 '하는 일 밖에 없다.
 
미묘하게 소리를 조절하기 위해 간혹 어깨를 오그리기도 하고, 허리를 구부리기도 하는동안
이 짧은 곡을 치는 동안에도 땀으로 흥건히 젖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조금만 신경을 써줘도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모래바람이 일던 땅에 비가 오기도 한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곡들은 그렇게 정성을 요구하고, 마음을 요구한다.

어쨌거나, 일주일에 한 번 연습할 시간도 나 주지 않는 나같은 얼치기가 제대로 표현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래도 미묘하게 변하는 음의 분위기가 절묘한,
그렇기에 짧지만 분위기 있게 옴팡 즐길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가끔 하루가 너무 길고 힘들어 지칠 때,
슈베르트의  긴 소나타들은, 아직은 자연스럽게 치는 것이 버거울 때,
쌉싸름한 추억에, 달콤한 꿈에, 동시에 빠져들게 하는 슈베르트의 묘약을, 
이 짧은 곡을 치며 간단히 즐기기도 한다.



***

그러나



뽕짝같다는 남편의 말은
오래도록 잊혀지지를 않는다.



아마도 내가 제대로 치지 못했던 탓이리.


미안하다 슈베르트.




 
 


Schubert -
Ungarische Melodie (Hungarian Melody) D.817............... Played by me



by 그림자놀이 | 2009/09/23 15:04 | 낭만주의자의 취향 | 덧글(2)
Commented by hkmade at 2009/09/28 16:24
아 죄송합니다.
근데 전 원곡을 듣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어요. (물론 사전에 본문을 읽은 영향이 크겠지만..ㅎㅎ)
근데 저처럼 클래식에 문외한인 사람이처음 듣는 곡인데도 굉장히 친숙한 느낌이 곡이에요. 예전에 흥얼흥얼 거렸던 뽕짝의 느낌처럼 말이죠. ^^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9/29 06:11
원래 이 곡 자체가 뽕짝 분위기 나는 게 맞습니다. ^^;; 제가 칠 때의 문제는, 다른 분위기는 다 못 잡고 그놈의 뽕짝 리듬만 탄다는 데 있지만요. ^^;
슈베르트 곡들 중에는 요런 스타일의 리듬 때문에 친숙한 곡들이 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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