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08일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1) - Schubert Strinig Quintet (D.956)



*
1826년, 생의 마지막을 앞둔 베토벤은 자신의 마지막 string quartet의 마지막 악장에 수수께끼같은 말을 집어넣어 놓는다.

  
   그래야만 하는가, ( Muss es sein?) 그래야만 한다. (Es muss sein.)

그 의미가 무엇이건간에 (심오한 의미인지, 혹은 사소한 의미인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음악에 달라붙은 몇 줄의 텍스트는 후대의 모두에게 역시나 심오하거나 사소한 물음을들 끊임없이 만들어 내었다.
그 의미의 비밀만큼은 베토벤 자신 이외에는 알 수 없는 채.


1828년 생의 마지막 해에 슈베르트는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두 대의 첼로를 위한 Quintet 을 작곡한다.
이 곡에 대해서는 그 어떤 확실한 자료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자필악보도, 하물며 그가 일상적으로 남겼던 스케치의 흔적도, 정확한 작곡 날짜도, 친구에게 보낸 편지도,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다.
유일하게 작곡 시기를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이라고는
출판업자인 Probst에게 피아노 트리오(E flat) 의 진행상황을 재촉하는 편지 안에서의 한 구절 뿐이다.


 Sir, I beg to inquire when the trio is to appear at last.
 Can it be that you do not know the opus number yet? It is op.100
 I await its appearance with longing.

 I have composed, among other things, 3 sonatas for piano solo, which I should like to dedicate to Hummel, 
 Moreover, I have set several songs by Heine of Hamburg, which pleased extraordinarily here,
 and finally turned out a Quintet for 2 violins, 1 viola, and 2 violoncellos.
 The sonatas I have played with much success in several places,
 but the Quintet will be tried out only during the  coming days.
 If perchance any of these composition would suit you, let me know. 
                                                                                  October,2, 1828 Schubert. (to Probst)




그 유일한 편지 속에서, 이 곡이, 마지막 3 곡의 피아노 소나타의 완성 직후에 완성되었고
아마도 그 해 여름에 시작되어 가을에 끝을 내었었던 작업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만 해 볼 수 있는 상태다.


그가 왜 느닷없이, 그것도 독특한 악기 구성을 가진 quintet을 작곡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다.



*

마지막 해(1828)의 슈베르트에게는 행운도 많았고 그만큼 절망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처음으로 열린 그의 콘서트는 대대적인 성공을 불러왔지만
그의 콘서트 사흘 뒤에 빈을 방문한 파가니니가 몰고 온 어마어마한 충격에 휩쓸려
슈베르트의 콘서트 소식은 그만 신문에 실리는 것도 '잊혀져' 버리고 말았다.

콘서트의 성공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출판을 모색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그의 기악곡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나 보고 싶어했던 피아노 트리오의 악보는, 죽은 후에야 출판이 되었다.

그가 보냈던 곡들, 3곡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와, 퀸텟,그 모든 작품들은 거절당했고
출판업자는 그에게 '근자에 작곡된 하이네 시에 붙인 노래들' 만 보내다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슈베르트는, 아마도 끈질긴 희망을 놓아버린 것일까,
10월에 마지막 편지를 보낸 이후로, 결국 그에게 아무 것도 보내지 않는다.


" Don't talk to me about music. Sometimes it seems to me as though I no longer belong to this world."
                                                                                       - Schubert to Anschutz, summer 1828



하지만 그가 그렇게 결국 모든 희망을 놓아버렸다고 하기에는 정 반대의 상황 역시 이 마지막 해에 일어난다.
죽기 직전까지 그가 작곡을 멈추지 않았었던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심지어는 지난 작품들을 꼼꼼히 다시 교정하는 작업까지 하고 있었다.
(그 모든 공연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great 교향곡의 스코어 역시 그 해 3월까지 붙들고 씨름하고 있었고,
초기의 미사곡들을 수정하는 작업역시 진행되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희망을 놓지 못했던 '교회 음악가'로서의 꿈은,
베토벤이 존경해마지 않았던, 헨델의 스코어를 붙들고 공부하는 일로 시작한다.
"오늘에서야 내가 뭐가 부족한지 알겠어!!" 라고 말했다는 그는, 헨델의 스코어를 공부하기 시작하고
'공연될 수 있을만한, 전통적 양식에 적합한' 미사곡들과 종교곡들을 쓰기 시작했으며 (마지막 타협이었을까?)
죽기 직전에 대위법 수업 들으러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였고,
그렇게 '절망' 과는 정 반대의 지점에 동시에 서있기도 했다.


 그는, 그래야만 했을까?



*

1824년 이래로 Music Society로부터  오라토리오 한 곡을, Diabelli 에게서 퀸텟 작곡 의뢰를 받은 베토벤은
결국 그 것들을 완성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가 남긴 것은 '그 앞에 무릎이라도 꿇겠다' 고 말했던,  헨델의 스코어들을 공부한 흔적과,
스물 네 마디가 작곡된 채 남겨진, 짧막한 큇텟의 스케치였다.

(이 퀸텟 스케치는 그의 사후에 'Ludwig van Beethoven's last musical thought' 라는 제목으로 출판된다.)

베토벤의 죽음 이후에 음악적인 자료들은 대부분 쉰들러에 의해 슈베르트에게 전해지게 된다.
평생토록 너무나 존경했고 사랑했던 베토벤이 남기고 간 무언가를 그렇게 자신의 언어로 마무리 하고 싶었던 것은
슈베르트의 바램이었을까?
아니면 베토벤의 뒤를, 슈베르트가 이어주기를 바랬던, 낭만주의자 쉰들러의 바램이었을까?


어쨌거나 베토벤이 쥐고 있었던 렐스타프의 시집은,
슈베르트의 손으로 넘어간 후 1828년의 봄과 여름에 걸쳐 주옥같은 노래들로 다시 태어나고, 
    ( 이 노래들은, 그의 사후에 우리가 알고 있는 '백조의 노래' 가곡집에 실리게 된다.)
베토벤이 열망하던 오라토리오 작곡을 위해 죽기 전까지 공부하던 헨델의 스코어들은,
역시나 슈베르트에게로 넘어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죽기 바로 직전까지, 종교음악에 매달리게끔 만든다.


....그리고, 베토벤의 미완성 퀸텟의 흔적도 어쩌면 그렇게 슈베르트에게 갔을 것이다.
그의 의지이든, 쉰들러의 의지이든.


그리고 슈베르트가 우리에게 남긴 퀸텟은, 우연인지도 의도인지도 알려지지 않은 채,  
베토벤의 미완성 퀸텟과 똑같은 조성인 C major의 이름표를 달고 있다.


                   그는, 그래야만 했을까?

 


*

베토벤의 후기 콸텟을 듣는 것은 꽤 오랜 시간동안, 나에게는 불편하고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몇 몇 선율미가 아름다운 악장들은 들을 수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도무지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달까.

죽기 몇 년 전부터는 타인과 대화도 하지 않았다던, 귀가 들리지 않은 채 너무 오랜 세월을, 닫힌 세상에서 외로웠을 그의 마음을
'열려있는 세상' 에서 편히 앉아 '귀로 들리는' 음악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나는 매번 불편하고 난감해지곤 했었다.


하지만 선율이 아름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듣는 순간부터 제법 친숙하게 느꼈던 악장은
의외로 매우 어렵게 들릴 줄 알았던 (부제의 무게감 때문에라도) 이 곡의 4악장이었다.

여전히 불협화음같고 기괴한 느낌으로 가득하지만
내 귀에는, 이 악장이 슈베르트의 퀸텟 1악장과 너무도 유사한 형태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다른 화법으로 말하는 것 같달까...
내가 이 곡을 이해했다면 그것은 어쩌면 역으로, 따스하고 밝은 구석을 가진 슈베르트의 퀸텟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슈베르트의 퀸텟은, 그래야만 할까? 그래야 한다, 는 베토벤이 남긴 마지막 화두 붙들고 시작한,
슈베르트식 대답과 화법은 아니었을까..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닌 내가, 얄팍한 귀로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으랴만은
이 두 곡은 꽤 오랬동안 나에게는 마치 베토벤의 질문과 슈베르트의 대답으로 들렸고,
베토벤이 '그래야만 할까? 그래야 한다' 라는 말로 맺은 마지막 말을,
마치 슈베르트가 소중히 붙들고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들려왔었다.





  
 

물론 베토벤의 '그래야만 할까' 가 비장함과 비통으로 가득하다면
슈베르트의 '그래야만 할까' 는 좀 더 처연한 슬픔, 과거를 돌아보는 시선으로 눈물을 글썽이고 있고,




  

이어지는 베토벤의 '그래야만 한다' 가 확고함이 그 기반이라면
슈베르트의 '그래야만 한다' 는 확고함 속에서도 일말 머뭇거림이 있달까.....조금씩 흔들리는 듯.

 



 

그리고 이제 여기서부터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베토벤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그래야만 한다' 의 주제로 계속 수렴하면서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 달리
슈베르트의 대답은 이제 여기서부터 펼쳐지는 것이다.



그는 베토벤이 '그래야만 한다' 고 확언한 뒤에 닫아버린 세상을 다시 한 번 활짝 펼친다.


그 끝간데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즐겁고 아픈 나날들에 대한 찬사,
생이 우리에게 보여준 모든 층위를, 그는 더할나위 없이 애잔하고도 아름다운 선율로 펼쳐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명확하지도 간단하지도 않다.
삶을 어떻게 그렇게 확언한단 말인가!  슈베르트는 바람처럼 방랑하고, 계속 묻고 있다.
너무 슬프지 않은,  애잔함과 잔잔한 미소. 마치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달콤 씁쓸한 열매 하나를 입안에 머금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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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놀이 | 2009/05/08 13:15 | 낭만주의자의 취향 | 덧글(4)
Commented at 2009/05/08 15: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5/08 16:36
방금 고클에서 스펠링 고치고 왔는데 그새 들어오셨네요. ^^ 빨리 발견해주시면 감사합니다. ^^
영어도 그렇지만 영타는 더더욱 익숙치가 않아서 이래요. ^^;

저는 사실 음악 들을 시간 별로 없는 거 아시죠? 슈베르트와 바흐를 줄창 끼고 있어요. 그러면 좀 정서상태에 균형이 잡힐까 해서요. ^^
고물 헤드폰 사용으로 인하여, 너무 오랜만에 바이올린 소리들도 듣고 있구요...

그나저나 저도 다시 모짜르트를 집을 수 있는 시간들이 왔음 좋겠네요.
Commented at 2009/05/10 09: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5/15 02:54
혹시 지금 겪고 계신겁니까? ^^
저는 토네이도 맞아서 7일째 전기 없이 원시생활 중입니다. (잠시 남편 학교 나와서 휴식중...)
비참한 상황에도 역시 슈베르트가 제격.....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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