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01일
타인에게 얼핏, 마음 한구석을 보여주는 일이란...

*
멀쩡하던 사람들이 가끔, 얼핏, 마음을 보여주는 때가 있다.
그것도 전혀 친하거나 가깝다고 느껴지지 않은, 사람이 말이다.

내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가 예쁘다고 말을 꺼낸 그녀는,
예전에 자신도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다닌 적이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편이 결혼 선물로 사준 목걸인데,
말레이시아를 떠나 미국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그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면 위안도 되고,
왠지 신이 나를 지켜줄 것 같고 그래서 목걸이를 목에 거는 것에 더 집착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서 살 때는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미국에 오고부터 그녀에겐 온통 나쁜 일들만 일어났더라는 것이었다.

My husband... he lost his leg, here,... anyway...

그녀는 유독 'here' 을 강조해서 말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네 목걸이 참 이쁘네.

내 딸이 내 그 십자가 목걸이를 달라고 계속 조르는데..
우스운 말이지만,
왠지 그 목걸이를 하고 있으면 그애에게도 나처럼, 안좋은 일이 계속 생길 것 같달까....
말레이시아를 떠나오면서, 그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서, 신이 항상 나를 지켜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는 온통 안 좋은 일만 생기니까, 걸고싶지 않더라고..
그걸 걸고 있으니까, 왜 나를 안 지켜주냐고 불평을 더 하지 뭐냐...
그렇다고 마음 속에 신을 두고 믿는 것이 더 쉬운 일이라는 건 아니지만
불평하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고...,

그녀는 웃으면서, 다시 한 번 내 목걸이가 맘에든다고,
늘 그랬듯이 씩씩하게 웃는다.


**
멀쩡하던 사람들이 가끔, 얼핏, 마음을 보여주는 때가 있다.
그것도 전혀 친하거나 가깝다고 느껴지지 않은, 사람이 말이다.

혼자 사는 게 편했는데, 갑자기 너무 외로워서
심각하게 데이트를 시작했는데, 세 명의 여자에게 퇴짜를 맞았다면서
'니가 보기에 내가 뭐 문제가 있어 보이냐?' 고 묻던, 나이 50이 다 되어가던
내 conversation partner 도 그런 경우다.

그럴 때면, 그네들이 얼마나 외로웠으면,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나에게 그렇게 마음을 드러냈을까 싶어
마음 한켠이 시큰해지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매 번 그네들을  어느정도는 부러워하고,
그런 용기도 없어서 나는 참으로 내 마음을 꽁꽁 숨기고 산다, 고 생각하곤 했는데
그것이 실은 '용기' 를 가지고 작정하여 나오는 말들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도 모르게 얼핏 보여주는 옆모습 같은 건 아닐까, 어제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어쩌면 누군가도 나에게서 얼핏 그런 옆모습을 보았을런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우리는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스치듯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닿을 듯 말 듯.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머릿 속에 이 곡이 뱅글뱅글 맴돌았다.

이방인으로 사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로 느껴지는 것은,
아마 그녀도 나도, 낯선 곳에서 떠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에게, 어디가 익숙한 곳이고 또 어디가 낯선 곳일까.
우리가, 말레이시아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해결되는 일일까.
 

 

****
슈베르트의 미사곡을 들으면서 느꼈던 그 이상한 따뜻하고도 서늘한 감정을,
나는 이 곳에서, 완벽히 이방인이 되고서야 속 깊이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는 늘 돌아갈 곳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었고,
애초에 돌아갈 곳이 없다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일게다.

마치, 본능적으로 엄마 품을 그리워하는 아이처럼,
절대자에 대한 그의 태도는 한결같이, 안식에 대한 꿈같은 그리움으로 가득하고,
그의 종교곡들은 한결같이, 그 내면의 기도, 포근함과 평화와 안식이 가득한 누군가의 품에 안기고픈 '갈망' 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은 그 곳은, 어디일까.
갈망하면, 그 곳에 갈 수 있기는 할까.

그저 마음 속 열망만으로만 가능한 세상은 아닐까.

그러나, 불평과 토악질 대신, 내면의 기도로 가득한,
그렇게 은근히 마음 한 구석을 보여주는 이 곡에서
그 절망의 심연 속에서도 끝끝내 믿음을 놓치 않은 그의 소박하지만 따스하고 절절한 기도를 듣다보면

그는 참, 어리숙하게도 착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씩씩하게 살고 있는 그녀처럼.
혹은 나처럼.




Schubert : Mass No.5 in A flat major D678, Missa Solemnis : VI Agnus Dei - Nikolaus Harnoncourt
(sign up을 하면 전곡을 다 들어볼 수 있습니다.)

 뒷부분만....




이 미사곡은 사실 황제의 취향과도, 당시의 미사 관례와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꽤 오래 거절되었던 곡이었다.
   
He(Schubert) said to me : "Not long ago, I took a Mass to Court Kapellmeister Eybler for performamce in the Court Chapel....When, some week later, I went to fine out my child's fate, Eybler said the Mass was good, but was not composed in the style the Emperor liked. So I took my leave and said to myself : So I am not fortunate enough to be able to write in the Imperial style."   - Josef Hauer


제대로 된 미사곡을 쓸 수 있을 만큼, 나는 운이 좋지도 못한 모양이라는 자괴감과 함께,
몇 년 뒤, 죽기 몇달 전 그가 남긴 역작(Mass in E flat Major D.950)은
아마도 그들의 '취향' 을 고려한 탓일까, 아니면 오랜 염원이었던 kapellmeister 에 대한 버리지 못한 희망 때문일까..
훨씬 더 전통적인 미사곡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미사에 '적합하지 않다' 는 이 곡을
그는 그냥 내버려두지도 못한 채, 꽤 오래 붙들고 손을 보고 있었다.
죽기 직전, 대위법 수업을 들으러 갔던 것도 아마 그런 맥락으로 봐야 할 것이다.

마치, "부족하다면, 더 열심히 살아볼께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달까...
그리고 나는 이 곡에서 훨씬 더 은은하고 은밀하고도 간절하게 울리는 슈베르트의 마음을 듣는다.


착하다, 는 말에는 너무 많은 함의가 들어있어서 적절하지 않은데, 딱히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그의 미사곡들은 사람의 마음을 참 독특하게 어루만진다는 생각...
이 곡처럼,
그 어떤 곡보다도 아름답고 절절하게 울려퍼지는, Dona nobis pacem (평화를 주소서) 을 담은 채.
그 모진 운명에도 단 한번도 신을 원망하지 않은 채.

by 그림자놀이 | 2009/05/01 04:07 | 낭만주의자의 취향 | 덧글(2)
Commented by Levin at 2009/05/01 05:36
전에는 술마시면 웃고 떠들고 노래하다 처자는게 버릇이라면 버릇이었는데 요새는 딴건 없고 쳐자는거 아님 그동안 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꺼내버리는게 버릇이 되어가서 피곤합니다. 안마실수도 없고.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5/02 04:36
저하고는 반대시군요. 저는 술 마시면 말 많이 하는 편인데, 요새는 술 마시기도 싫거니와, 마실만한 일도 없지만....
술 마시면 오히려 조용히 혼자 있고 싶달까요...
늙어서 그런가봐요.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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