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27일
비 내리던 시카고
기차를 타고 집을 벗어나면서부터 흐려지기 시작한 날씨는
시카고에 도착하자 빗줄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예상치 않았다, 는 말은 우습고, 프로그램을 꼼꼼히 보시 않아서
1부에 말러의 뤼케르트 가곡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차 안에서, 프로그램 노트를 듣고서야 
(시카고 심포니는 프로그램노트를 mp3 파일로 미리 제공하고 있다. 이 얼마나 도시인적인 편리함이란 말인가!!!)
그닥 친하지 않은 (이라고 말해놓고 그의 음악을 꽤 알고 있는 걸 보면 웃기지만)
말러의,
그러나 개중 좋아하는 곡이 끼어있음에 반가워하였지만
이런 저런 말러의 가곡들이 머릿 속에서 잠시 얽히고 섥혀서, 무슨 곡인지 명쾌하게 떠오르지 않아 약간 짜증이 남과 동시에
어쩌자고 나는 슈베르트 9번, 한 곡만 듣자고 다른 프로그램은 보지도 않았었나 싶었다.

가슴이 먹먹해진 것은 1부의 말러에서부터였다.
긴 이야기는 생략하자.
그 곡을, 젤 끝에 부를게 뭐란말인가.
내 마음과 똑같은 그 노래를, 1부의 마지막으로 그녀가 불렀을 때, 
그리고 그 노래가 2부의 슈베르트와 맞닿아 있을 것이라 여겼을 때, 

아, 말러를 들으면서도 눈물이 날 수 있구나, 싶었던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다.


2부는 더 말해서 무엇하랴.

다음에 어떤 선율이, 어떤 리듬이 나오는 지를 훤히 꿰뚫고 있는 나로서는
한 선율, 한 선율이 지날 때마다, 끝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음악이 이제 곧 끝나겠구나 싶어서 
그만 처음의 혼 소리를 들을 때부터 아쉬움에 스커트 끝자락을 말아쥐고 있었다..



하이팅크과 시카고 심포니의 슈베르트 연주는, 조금 느린 템포에, 차분하고 또박또박한 연주였다.
줄리니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좀 더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는듯한 연주.

슬프게도, 나는 이 곡을 처음으로 실연으로 듣게 된 어제,
이 곡이 왜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지를 아주 명확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달까.

그러니까 그당시에도 '이 음악이 울려퍼질 때 모두들 감동하였다' 는 말을 했던 슈만이 지칭한 '모두' 에
아마도 오직 슈만밖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처럼...

2악장에서 머리를 긁적이고 몸을 뒤척이는 앞좌석 젊은이과, 프로그램 노트를 보면서 이해해보려는 옆좌석 부부의 부스럭거림이
짜증스러웠던 것은 그렇다 치거니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두가 이 곡을 마음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그 흐름이, 흘러가주지를 않는구나, 고 느꼈다면
너무 감상적이었을까.
이전에 베토벤 9번을 이네들의 연주로 들으면서도 느낀 느낌이지만
뭐랄까, 이들의 현소리는 좀 차갑게,... 까지는 아니어도 왠지모르게 이지적이고 도시적인 느낌으로 들렸었는데
(따뜻하고 풍성하게 출렁거리는 그런 느낌이 부족하달까..)
어제 역시나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곡이 너무 좋아서, 뭐 용서해 줄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물론, 주제와 주제 사이의 연결고리들의 절묘함이다.
그 순간의 정적과 사그라듬, 그 안에 모든 비밀이 숨겨져있는 것 같았다.

2악장의 아름다움은, 실연으로 들었을 때 한 10배쯤은 강력한 듯 했다.
아쉬움이 있었다면, 이 곡에서서 저음현들의 소리가 너무나 매혹적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어제의 연주는, 너무나 강한 금관들 사이에서 오히려 현악기 (특히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이 너무나 죽어버렸다는 것...

그러나,
악기들이, 마치 대화하듯 하였다는, 슈만의 말 그대로
오케스트라는, 그 자체로 춤을 추고 요동치고 있었다.
역시나 아쉬움이라면, 단원들 모두가 그 곡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더라는 것. 

끊일 듯 끊어지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불어오는 바람처럼 내 몸을 휘감는 그 음들의 떨림
슈만의 말처럼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 을 열어주는 그의 음악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냥 잠들지 못하고
호텔의 시끄러운 바에 혼자 앉아서 와인을 두 잔이나 들이키고서도 쓸쓸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이 곡을 작곡했을 당시,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했다고 전해진다.
밑을수 없을만큼 밝고, 들떠있었다는 기록과 함께,
그의 가장 밝은 한 때가, 젊음이, 꿈과 희망이 가득 들어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연주되기를 열망하며 그가 너무도 사랑했던 이 곡은,
죽을 때까지, 그는 여백을 꼼꼼히 메워가면서 이 곡을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치고 했던 흔적으로 가득하다.

가장 큰 희망이 그의 가장 큰 절망과도 맞닿아있는 이 곡.


어제는 고작 와인 두 잔에 술이 많이 올랐다.









schubert symphony NO.9

기분을 좀 업 시키기 위해선, 이 연주가 제격인 것 같다.

청년 슈베르트, 가 들어있어서 좋아한다기보다는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가 이 곡을, 마치 몸을 흔들며 노래하듯, 즐거이 연주하고 있는듯한 그 분위기가 좋달까.
슈베르트의 악보 원래 그대로 연주한 유일한(이 말은 맞는지 모르겠지만) 음반이라고 알고 있다.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는다.
by 그림자놀이 | 2009/04/27 12:45 | 어쩌다 한번씩 가는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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