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25일
Schubert, Great Symphony를 만나러 가는 길....
*
나이 서른이 넘어서 슈베르트에 푹 빠져버린 이유에 대해서
나는 늘 '길을 잃어서' 라고 생각해 오곤 했다.

누구나 대부분 그렇듯, '과잉' 의 20대를 지나는 동안
나는 늘 내 눈 앞에 있는 저 언덕을 그저 똑바로 바라보며 흔들림없이 질주하기만 하면,
그 목표를 향해 두 주먹 불끈 쥐고 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언덕을 넘어갔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것이 허허벌판임을 알았을 때,
그 때, 황망함에 빠져버린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린 것이 슈베르트다.
그에게로 얼굴을 돌리자, 내 30대가 시작하고 있었다.

*
그러나 이 곡만을 놓고 보자면, 처음으로 들었던 것은, 한참 어렸을 적, 교복을 입은 채였다.
당시에 그의 '노래들만' 알고 있었더 나는
그는 생에 단 한곡의 교향곡을 남겼고, 
그것이 '미완성' 이 되었던 이유가 '작곡 능력이 떨어져서' 라고 믿고 있었었다.

정말로...미안한 일이다 슈베르트. 


*
그 후로도 슈베르트의 기악곡과 친해지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이 곡만큼은, 교복을 입고 부동자세로 4악장까지 서서 들었던 그 날의 감동 그대로,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실연으로 듣고 싶은 곡  1위에, 무려 베토벤과 브람스의 교향곡들을 다 제치고 
그 날 이후 변함없는 부동의 1위로 자리잡은 곡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곡을, 이제 내일이면, 들으러 가는 것이다!!!!!
                                    

*
싱글 티켓이 열리자마자 표를 샀다는 말을 듣자
남편이 '좋아하는 지휘자야?' 라고 물었었다.

그 말을 듣고 잠시 주춤, 했던 것은, 
이 곡을 듣는 것이 목적이었지 그 외의 것은 생각도 안해봤기 때문이었다.

나는 몇 년 째 이 곡이 그 어떤 오케스트라든 프로그램으로 올라오기만을 기다렸을 뿐이고,
심심하면, 도대체 이 좋은 곡을 왜들 연주하지 않느냐고 혼자 분통을 터뜨리곤 했을 뿐이다. 

어쨌든 시카고 심포니니는 유명한 악단이니까 알아서 잘 할 것이고, 하이팅크도, 뭐 알아서 잘 할 것이다.
그들은 프로이니까 알아서 잘 하지 않겠는가. 
농담처럼, 하이팅크여도 상관없고 히딩크여도 상관 없다고 말 하긴 했다.

그리고 티켓을 사고 난 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 출렁이는 물결을, 기계에서 나온 소리가 아닌 채로, 듣고싶다는, 그 이유 하나밖엔 없는 것 같다.


*
그 날, 
요즘 사람들은 음악을 레코딩으로 먼저 만나지만, 우리 때만 해도 음악을 악보로 젤 먼저 만났다고 했던 
브렌델의 말이 문득 떠올랐었다..
슈만이 이 곡을 처음 만난 것도, 당연하고 우스운 말이지만, 레코딩이 아니라 악보였다.
그 누구의 해석이 아닌 본인의 해석으로 머릿 속에 음악을 그려봤을 그의 전율은
아마 '명반' 이나 '추천반' 을 좋은 오디오에 걸고, 편안히 앉아, '감동을 작정하고' 듣거나
'해석의 차이'를 염두에 두거나 구별해보자고 작정하고 듣는 감동과는 
아마 차원이 다를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미 레코드로 수도없이 들은 나에게는 불가능인 일이겠지만
공연장에선, 이 곡을 처음으로 만나는 그런 느낌으로, 
악보의 여백마다 온통 빽빽하게 교정으로 가득했다던, 꼼꼼한 그의 악보를 손에 들고 펼쳐보는 기분으로,
그의 handwriting의 온기를 손으로 어루만져보는 기분으로,
그렇게 만나고싶달까............. 희망사항은 그러하다.
그리고 나는 그 생각만으로도 몇 달 째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었다.


*
작년에 안드라스 쉬프의 베토벤 소나타 연주를 듣다가, 
그가 마지막으로 연주한 26번 소나타를 듣고 눈물을 펑펑 쏟았었다.
(별스러운 일은 아니고, 원래 종종 그런다.)
작별과 부재, 그리고 재회를 노래하는 그의 소나타가, 정말 있는 그래도 가슴을 때렸기 때문이었다.
깜깜한 공연장에서, 천장을 때린 음표들이 그대로 가슴으로 쏟아지던 탔이었다.

마침 다들 일어서서 앵콜을 외치는데, 옆에 앉은 아줌마가 '"대단한 쉬프 팬인가보네요" 라고 묻길래
잠시 어벙벙해진 기억이 난다.
눈물 콧물을 닦으면서 "아뇨.. 대단한 베토벤 팬이라서요..." 라고 말했더니 
그 쪽 역시 잠시 어벙벙한 표정을 짓더니
박수소리가 묻힐만한 소리로 웃으면서 니 말이 맞긴 맞다며 배꼽을 잡았었다.

나는 지금도 그 말이 뭐 그리 웃긴 말이었는 지 알 수 없지만,
이번에도 오지랖 넓은 미국 아줌마가, "어머, 대단한 하이팅크의 팬인가보네요." 라고 물어온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대단한 슈베르트 팬이라서요." 라고 대답할까.

아니면,

슈만처럼

"천국같아서요...." 라고 대답할까?






 



사실 이 곡은 곡 자체가 너무 좋아서, 누가 연주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처음 나에게 감전을 선사한 연주는 줄리니의 지휘였고
작년엔가 아마 이맘때쯤, 라디오에서 wand의 연주를 듣고 꽤 좋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그가 지휘한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길래.... 




by 그림자놀이 | 2009/04/25 13:01 | 낭만주의자의 취향 | 덧글(6)
Commented by Levin at 2009/04/25 17:53
그 '하이팅크'든 누구든 좋다니 이거 보통 배부른 소리를 하는게 아니시군요!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4/27 08:34
그러구보니 배부른 소리.. ^^ ,,,,,,,,,,,,,,,,,,,,,,
라뇻~!!

5시간 기차 타고 가서 호텔방에서 혼자 하룻밤 자면서 보러가는 공연입니다.,,,,, 배 고픈 소립니다. --;
Commented by 다음엇지 at 2009/04/26 00:05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 행복한 시간을 글로 나눠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대신에 저는 최근에 만원 세일하는 DVD 중에 뮤직 페라인에서 빈필과 함께한 뵘의 연주를 가져왔습니다. DVD 를 보면서 역시 화면이나마 보면서 듣는 것은 그냥 듣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4/27 08:36
뵘의 연주도 정말 대단한 연주지요.. 무척 좋아합니다. ^^
실제로 보니 '악기들이 서로 대화하는 듯 하다'는 슈만의 말이 구구절절 이해가 되더군요. ^^
또 하나 느꼈던 것은, 오케스트라 단원들 모두가 그 흐름을 따라가야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이겠구나.. 싶기도 했구요.
어려운 곡은 어려운 곡이다... 싶었습니다. ^^
Commented by CelloFan at 2009/04/27 11:06
저는 쥴리니랑 반트의 음반만 가지고 있는데, 슈베르트 9번은 근래에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네요. 오늘 퇴근길에는 아이팟에 담겨진 반트의 9번을 들어봐야 겠네요.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4/27 11:33
점잖은 연주들만 가지고 계시는군요. ^^

크립스의 연주도 좋고, 근자에는 아르농쿠르의 연주도 꽤 좋은 느낌으로 들었습니다.
가디너의 연주도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릴만 하긴 하지만, 신선했구요.

사실 곡 자체가 너무 좋아서 (이 말은 맨날 하는 말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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