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20일
피아노 앞에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보는 꿈
*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 중의 하나로 이 곡을 치는 일을 꼽았는데
도대체 '같이 칠' 사람이 있어야 어디 시도라도 해 볼 게 아닌가?
라흐마니노프 악보를 누가 가져다 주었을 때, '어려워서!!' 못치겠는 것과 이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니까 이 곡은 '같이 칠' 사람이 없으면, 시도조차 해 볼 수 없다는 거 아닌가?
어려워서 못 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시도조차 안해봤기에
악보를 들어다 본 것도 작년에 한국에 나갔을 때가 첨이었다.
몇 몇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그리 어렵게 보이지도 않았으나,
그러면 뭐하겠는가, '같이 칠' 사람이 없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을....


**
파트너 없이라도 좀 쳐봤음 싶어서 며칠 전에는 "오호라, 나에게 있는 것이 디지털 피아노가 아니던가!!" 
싶어서 평소에는 건들지도 않는 각종 기능버튼을 유심히 살펴 보았으나,
생각했던 것과 달리 두 파트를 다 녹음하는 것은 불가하였고...
그래서 저음파트만을 녹음한 다음에, 그걸 틀어놓고 고음파트를 연주해보는 형식으로 한 번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


***
그러나.
낮잠 깨고나서 한 한시간은 조용히 앉아서 잘 노는 아들녀석을 옆에 두고, 이틀동안 낮에 제법 심각하게 장난을 해 보았으나...

다음과 같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들만 남겨놓은 채,
다시, 이러나 저러나, 파트너를 구하는 일 밖에는 이 꿈을 이룰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만 나고 말았다.




1. 무려 20분가량 되는 이 곡을, 저음 파트 부분(왼편에 앉은 사람용)만 같은 속도와 느낌으로, 흐름을 가지고 쳐서 녹음한다는 게
나같이 어리버리한 취미생활자에게는 무리였다. 물론 고음파트만 또 그렇게 치는 것도 역시나 무리.
머릿 속에서 한쪽 파트를 떠올리면서 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한 번 꼬이면 안되더라는...--;)
뭐, 죽어라 연습하면 될 지도 모르겠으나 그러고 있다가는 우울해 질 것 같았달까? 

2. 저음파트와 고음파트에서, 같은 위치에서 페달을 밟을 수 없으므로,....소리가 엉뚱하게 뭉개지고 음 길이가 고르지 않다.
(실제 두사람이 연주한다면 아무래도 고음파트의 한 명이 페달을 조절할텐데, 일단 저음부를 녹음할 때도 페달을 써야 하고
그걸 틀어놓고 고음부를 연주할 때도 페달을 역시 좀 써줘야 하는데, 아까 저음부 녹음했을 때 언제 어느위치에서 어느정도 밟았는지를 일일이 다 기록할 수도 없거니와...)

3. 루바토가 불가능하다.
 인간 두 명이 앉아서 친다면 서로 호흡을 맞추며 약간씩 길이를 조절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서로 몸도 흔들어가면서 즐겁게 루바토를 즐길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녹음의 문제는 좀 다르다. 
저음부를 녹음 할 때 한 번은 루바토를 주면서 해 보았는데
이 후에 그것을 단지 '들으면서' 고음부를 연주하는 것은 참으로 난감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이미 '과거'에 녹음된 저음부를 들을며, 그 루바토에 같이 분위기를 맞추며 고음부를 연주한다는 게 가능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맞췄다기보다는, 그 리듬을 '쫓아 가느라' 정신이 없었달까. 아무튼 우스웠다.


4. 미세한 강약 조절 역시 불가능.
물론 악보에 나온 강약 표시대로 정확히 일단 저음부를 녹음하고,
그 녹음을 들으며 이어서 고음부도 정확히 그 표시대로 맞추어 연주하려 노력해 보았으나
인간 두명이 칠 때는 충분히 몸짓으로, 숨쉬기로 함께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그 미묘한 강 약조절이,.... 되지 않았다.
물론 디지털 피아노는 원래 일반 피아노처럼 강약 조절이 되지 않기도 하거니와..





5. 쓸쓸하였다.




6. 그래서 눈을 감고 상상하면서 쳐보았으나.... 미스터치만 많이 나오고 별 소득이 없었다.




7. 처음엔 '오호!!' 하면서 시작했던 일이, 사실 반도 못 가서 흥미를 잃게 되었다.

8. 혹자는 '그럼 네 손이 아니라 두 손용으로 편곡된 것을 쳐봐' 라고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손이 작은 나에게는 무리스럽기도 하였거니와, 네 손으로 치라는 걸 혼자서 다 치고 있는 것도 쓸쓸하긴 마찬가지.


9.어쨌거나 너무 좋아한 나머지, 혼자서 쳐 본,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판타지, 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10. 중간중간 들리는 웃음소리는 둘째 아들의 것이다.  녀석은 미스터치가 나올 때마다 웃었다. --;







Schubert- Fantasy in F minor (for four hands) / played by me.....alone.....
by 그림자놀이 | 2009/04/20 13:48 | 낭만주의자의 취향 | 덧글(3)
Commented by Lucienne at 2009/04/23 00:04
아.. 쫓아가느라 정신없다는거 동감해요 ㅠㅠ
저는 실내악을 하고 싶은데 주변에 바이올린 하는 친구가 없을때,
바이올린 소리만 다운 받아서 피아노를 쳐보려고 했던 적이 있었어요.
정말 그 소리가 제가 따라가려고 발버둥만 치는 꼴이 되더라구요...

저 피아노 듀엣 정말 좋아하는데, 너무나 멀리 계신 그림자놀이님 ... ㅠㅠ
Commented by Lucienne at 2009/04/23 00:09
아참, 또 그렇게 다운 받아서 맞추려고 하면 음정 또한 미세하게 달라서
치면 칠수록 스트레스가 극대화되더라구요ㅠㅠ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4/23 11:28
그러게요 가까이 있으면 한 번 시도해 봄 직도 한데...

요즘 아들녀석이랑 듀엣 시작했습니다. 음감을 길러주기 위해서 애초부터 저음부를 맡겨버렸죠 ^^
간단한 곡들을 해 봤는데, 나름 즐겁더라구요. 녀석이 얼른 커서 함께 근사한 곡들을 쳐봤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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