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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16일
* 시를 만날 때 우리의 시선은 내면으로 향한다. 그 모든 이미지들은 겉으로 드러나 망막에 맺히는 영상이 아닌 마치 눈 속 저 깊은 곳, 머리 속 한참 뒤편에 상이 맺히듯, 그렇게 내면으로, 과거로 향하게되기 마련이다. Brendel과 함께 한 Fischer-Dieskau의 겨울나그네 영상을 보고 경악했던 것은 영상으로 본 피셔-디스카우의 시선이 완벽하게 내면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피아노 반주의 미묘한 움직임에 표정과 눈빛으로(까지) 흐름을 만들고 있었고 뜨고 있는 눈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분명 그의 '뒤편'이고 '안쪽'이고 '과거'임을 분명히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마치 버림받은 사나이, 절망의 심연에서 발을 질질 끌고 지팡이를 짚고 눈덮힌 길을 걸어가는 그 사나이의 내면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 눈덮힌 마음의 길, 그 마음 속의 '겨울 여정' 을 그 마음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 그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는 듯 말이다. ** 사실 '보여주고 있다', 는 말은 적절치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내 안쪽에 맺히는 이미지와, 노래하고 있는 가수의 내면에 맺히고 있는 이미지의 실체를 과연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단 하나, 너무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는 것은, 나의 내면이 정확한 속도로 동시에,함께 반응하고, 울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가 눈을 들어 '그녀와의 첫 만남' 을 추억할 때면, 내 시선도 똑같이 그렇게 과거로 향하곤했고, 그의 시선이 그녀의 집에 머무를 때면, 내 내면의 시선도 그녀의 집에 머물고 그 안에서 흐릿한 그녀의 모습을, 그리고 그보다 더 쓰디 쓴 그의 마음을 보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로 본인의 내면을 향하고 있는 그와 나의 시선이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만나지 않는 그 곳에, 평생 고민해도 어디 있는 지 손으로 짚어 볼 수도 없는 그 '마음'이라는 것이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감상 집어 치우고 쉽게 말하자면, 모든 시들이 그렇듯이 아주 개인적인 감정이,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고, 그것이 다시 또 개개인의 감성을 건드리는 탓일테다. 이 시역시 결국 '그 사나이' 의 이야기이며, 슈베르트의 이야기이고, 그리고 나의, 너의, 이야기이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다. 그러니 그 누가 마음 깊은 곳에서 <똑같은 영상>을 떠올리겠냐는 말이다!!! *** 그 기본적인 생각을 단번에 무너뜨린 것은, 얼마 전 유튜브에서 발견한 Bostridge의 겨울나그네 영상이었다. 다 용서 해 줄테니 칼자루만 좀 치워다오. ... 라고 쓰고보니, 용서 안되는게 계속계속 떠올라서.... --;; 심지어 "Mut!" 를 부를 때는 에는 의자 집어던져서 창문 깨부수고 발로 걷어차고 난리도 아니다. (그게 그런 의미의 곡이었나요...?) 일단 이 영상은 시의 이미지를 시선의 앞쪽으로 잡아놓았다. (아....왜....?) 그러니까 영화나 연극, 오페라를 보는 심정으로 보아주면 되는 것이다...(그러니까...왜??)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영상이었달까. 나의 마음은 전혀, 전혀, '그 사나이'의 마음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네들이 이토록 친절하게 '이미지' 를 다 제공해 주는 데도 왜 '그 사나이'의 마음을 볼 수 없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는 우리에게 내면의 이미지를 제공한다. 시가 노래하고 있는 것이 내면이기 때문이다. 그 '시의 마법' 을 부수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게 아닐까. 겨울나그네는, 오페라가 아니다. 스토리가 아니라 이미지가 주된 흐름 아닌가. 서술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겉으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마음의 영상들은 망막의 한참 뒤쪽, 머릿 속의 저 뒷편에 맺히는 것이다. 아주 은밀하고 개인적인 모습으로 말이다. 심지어 이 시에서의 '여정' 이라는 것조차 물리적으로 정말 추운 겨울에 짐싸들고 여행을 하고 있는 걸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어렵지 않은가. 그러니 온통 마음 속 이미지와 상징으로 가득한,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이 내면의 이미지를, 왜 굳이 시선의 앞으로 끄집어내어 보여줘야 하는 것인가? 게다가 그 이미지를 앞으로 끄집어 내어 눈 앞에서 보여주겠다고 하는 저 영상은 이해할 수 없게도 너무도 확실하게, 이미지가 아닌 스토리를 잡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 그 스토리 안에 존재를 규정하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게다가, 나름 애쓰고 있는 저 감독의 말을 듣는 내내 뭔가 불편한 '당당함과 과시욕' 같은 것이 비쳐서 '이해해보려고' 정성껏 보기 시작한 다큐멘터리가 오리혀 신경을 더 거슬리게 했는데 그가 뉴욕출신, 이라는 정보를 읽고서는, 편견을 가지면 안된다고 골백번을 더 생각하면서도 괜히 '더'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우습지만... **** 그러나, 그 시를, 그렇게 해석하나? 칼자루를 쥐고까지 그것을 '드러내놓고 표현' 해야 했나? 그건 이미 피아노가 다 표현 했잖아? 그가 표현하는 단어들이 죄다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멋있게 마루 바닥에다 꽂아야 겠나? 싶기도 하고, 아니, 그렇게 관객이 바보로 보이나, 싶기도 하고, 결과적으로는 내 마음 속 이미지를 허용하지 않은 그의 오만함에도 짜증이 났달까... 안다. 내가 구닥다리인 것도 알고, 영상예술에 문외한인 것도 알고, 성격이 좀 안 좋은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제법 열린마음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들을 가슴으로 이해는 못해도 머리로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뭐랄까. 시도 더이상 읽히지 않는 시대에, 시 좋아한다고 하면 괴물취급을 받는 시대에, 시를 낭송하면서 혀끝에 달랑달랑 매달린 그 언어의 울림과, 그것이 주는 마음 속 이미지에 황홀하다고 말하면 대화가 중단되어버리는 시대에 이런 예술마저 쌈박한 영상으로 보여줘야 알아먹는 세상이 되었나. 싶어서 문득, 화가났달까. 그리고 왠지 저 감독은 계속 영상을 '쌈박하게'만들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역시나 내 편견일까... 혼자 씩씩거리며 화 내다보니 좀 웃긴데, 어쨌거나 간단히 말하자면 이들의 시도는 영 취향이 아니었고, 억지스러운 저 영상을 보다가 브렌델과 디스카우의 DVD를 보다보니 오늘도 73분동안, 오롯이 그 마음을 따라 울고 웃었다는 것.... 소주 생각이 간절했으나 마땅히 구할 곳이 없어 좀 적적했다는 것... 그리고 유튜브도, 아마존도, 보스트리지의 저 영상에 다들 좋은 평들을 날리고 있는 듯 해서.. 조금은 외로워졌다는 것....... 그러니까 문제는 나에게 있는건가? 오늘 아침, 버스 안에서 무심코 펼친 페이지에서 발견한 슈베르트의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There is no one who understands the pain or the joy of others! We always imagine we are comeing together, and we always merely go side by side. Oh what torture for those who recognise this! - from Schubert's Journal (같은 노래지만 보스트리지의 칼자루 잡은 영상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 나만 그런가??) - 피셔-디스카우는 다만 '시 텍스트'에만 반응하고 있지 않다. 물론 그것이 가수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피아노 반주에도 아주 세심하게 반응하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면 이미지들 사이로 스토리(라기 보다는 '흐름' 이라고 하는게 낫겠다)는 아주 자연스럽게 잡혀간달까..... 유튜브의 누군가의 말처럼, 보스트리지의 노래는 영상을 제거하고 본다면 사뭇 너무나도 평면적이다. - 과거로 향하고 내면으로 향하는 피아노의 선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를 보고 있자면 어쩔 수 없이 몰입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절망, 자포자기, 체념, 자기 연민, 잊을 수 없는 과거, 보이지 않는 미래, 그 모든 것을 가진 이 복잡한 사내의 심리를 시보다 더 끔찍하게 '묘사' 하고 있는 마약같은 피아노 선율, 그리고 언어 텍스트와 비 언어적 텍스트인 피아노의 선율을 온 몸으로 묘사하고 있는 그는 마치 이미 죽어버린 누군가의 억울함을 대신 말해주려고 내려온 대리인처럼 느껴진다. 보는 내내 버림받은 사내의 여정에, 같이 동참하지 않을 수 없고, 그의 시선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고 그의 과거를 같이 추억하지 않을 수 없고, 그와 같이 죽어버리고 싶은 것을 어쩌란 말이냐. 피아노와 피아니스트, 가수만이 서 있는 이 무대가 제공하는 것은 훨씬 더 많은 상상력과 이미지들이 충만한 공간이다. 그 열린 공간에서 같이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마지막 노래를 들을 때 나는 시의 마법을 생각하고, 슈베르트의 선율의 마법을 생각하고, 피셔-디스카우가 만들어낸 마법을 생각하고 그리고 그 예술들이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생각하곤 하는 것이다. 내 눈의 바로 앞에 잡힌 까만 화면을 바라보면서. 내 망막의 한참 뒷쪽에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진 허허 벌판과, 사라져버린 사내의 발자욱을 생각하면서. 후반부에는 울고 말았어요.....라고 쓰고보니 거짓이다. 전반부부터 울었다.... ^^; 사실 이 곡은 들을 때마다 자주 운다. 이런 걸 듣고 어찌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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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브랜드가 매우 궁금하군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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