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10일
익숙함의 힘, Dietrich Fischer-Dieskau의 노래

*
호불호는 둘째치더라도, 그의 목소리는, 그저 고스란히 '익숙함' 으로 기억되어있다.

그 익숙함이 주는 위안, 그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은
비단 '노래'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음의 높낮이가 아닌, 그의 호흡, 목소리의 떨림과 톤, 마치 오랫 벗의 목소리를 전화 수화기 저 너머에서 확인하듯
반가움과 편안함, 안정감을 동반하는 그의 목소리는
나에겐 '좋다, 싫다' 의 평가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있는 영역에 속한다.


**
개인적인 좋고 싫음이라는게 대부분 그렇겠지만, 뭐 특별한 이유랄게 있겠는가,
아마 '좋아서' 듣기 시작했을테고, 그것이 꽤 '오랬동안' 이어졌던 것이 이유의 전부일 것이다.

무거운 책가방과 도시락 가방을 들고 버스에 올라 흔들거려야했던 열 몇살의 나에게
슈베르트와 슈만의 노래를, 한숨과 탄식과 웃음과 눈물을 들려주던 그였다.
이어폰 속으로, 고스란히 들려오던 그의 숨소리,
아스라히 잦아들며 내쉬는 숨소리로, 폭풍같은 목소리를 내 지르기 위해 들이키는 숨소리로 
그렇게 빈 곳을 가득 채워놓고 있던 그의 노래는 이미 '악보' 를 벗어나 '노래' 를 벗어나 '함께 호흡'하는 존재 그 자체였고
음표가 그려지지 않은 부분까지 고스란히 그의 노래에 따라 숨을 같이 따라쉬다보면
내 마음은 어느새 동경과 열망으로, 슬픔과 탄식으로 가득한 슈베르트와 슈만의 숨과 맞닿아 있곤 했다.



***
그러나 Dietrich Fischer-Dieskau 를 좋아하냐고 물을 때마다
난감하게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너무 오래 들어서 그저 익숙해진 것을, 뭐라고 해야 할 지 몰라서,
이제는 그 익숙함에 좋고 싫음을 재 보는 것이 가능한가 싶어선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꺼내 듣고 위안을 얻으며
그냥 별 생각 없이 자분 자분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고,
딱히 귀를 예민하게 열어두고 집중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충분히 전해지는 듯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격렬한 음악보다도 훨씬 더 '단순하게' 마음을 진정시키고 숨을 편안하게 해 준달까.

거기에, 좋고 싫음을 재 보는 것은 왠지 어색하기도 하고 필요 없는 일처럼 느껴지는 탓이다.




****
꽤 오랜 세월 알고 지낸 남편에게, 딱히 좋고 싫음을 떠나
이제는 그저 작은 손길 하나에도 편안함과 위안을 얻는 것처럼,
나의 사랑도 이제는 디스카우의 노래를 듣는 일과 비슷해 진 구석이 있다.


가끔은 임팩트가 적어졌다며 툴툴대기도 하지만,
사실 그 익숙함의 손길이,  세상 그 어떤 아픈 병도 치료해 줄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은 아닐까.


마침, 남편 덕에 간만에 갖게 된 음반이, 하필이면 그의 노래다.
남편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음반을 주문했을 리는 만무하나, 
마치 그걸 알으라는 것처럼, 디스카우의 노래가 모처럼 가슴을 잔잔히 울린다.







Schubert - Im Frühling(D.882) / Dietrich Fischer-Dieskau , Sviatoslav Richter









이 곡에서 '과거로 향한 시선' 은 순전히 피아노 반주가 끌고 가는 것 같다.
그 아지랑이처럼 몽롱한 기억들, 흐릿해서 아름다운 과거를 다루는 슈베르트의 재주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름다운 과거를 그려볼 수 있는 마음은, 결국 아름다운 현재와도, 미래와도 맞닿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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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놀이 | 2009/04/10 10:54 | 낭만주의자의 취향 | 덧글(3)
Commented by Levin at 2009/04/10 11:00
저는 요새 미츠코 언니의 슈베르트를 듣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4/10 11:02
어떤가요? 저는 그 언니 모짜르트밖에 들어보지 못해서....
Commented by Levin at 2009/04/10 11:43
아주 좋아요. D960은 리히터계열로 느린 편이지만 좀더 박력있다고 해야하나? 즉흥곡들도 좋구요. 언니가 섬세한 표현이 좀 죽여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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