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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는 둘째치더라도, 그의 목소리는, 그저 고스란히 '익숙함' 으로 기억되어있다.
그 익숙함이 주는 위안, 그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은
비단 '노래'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음의 높낮이가 아닌, 그의 호흡, 목소리의 떨림과 톤, 마치 오랫 벗의 목소리를 전화 수화기 저 너머에서 확인하듯
반가움과 편안함, 안정감을 동반하는 그의 목소리는
나에겐 '좋다, 싫다' 의 평가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있는 영역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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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좋고 싫음이라는게 대부분 그렇겠지만, 뭐 특별한 이유랄게 있겠는가,
아마 '좋아서' 듣기 시작했을테고, 그것이 꽤 '오랬동안' 이어졌던 것이 이유의 전부일 것이다.
무거운 책가방과 도시락 가방을 들고 버스에 올라 흔들거려야했던 열 몇살의 나에게
슈베르트와 슈만의 노래를, 한숨과 탄식과 웃음과 눈물을 들려주던 그였다.
이어폰 속으로, 고스란히 들려오던 그의 숨소리,
아스라히 잦아들며 내쉬는 숨소리로, 폭풍같은 목소리를 내 지르기 위해 들이키는 숨소리로
그렇게 빈 곳을 가득 채워놓고 있던 그의 노래는 이미 '악보' 를 벗어나 '노래' 를 벗어나 '함께 호흡'하는 존재 그 자체였고
음표가 그려지지 않은 부분까지 고스란히 그의 노래에 따라 숨을 같이 따라쉬다보면
내 마음은 어느새 동경과 열망으로, 슬픔과 탄식으로 가득한 슈베르트와 슈만의 숨과 맞닿아 있곤 했다.
***
그러나 Dietrich Fischer-Dieskau 를 좋아하냐고 물을 때마다
난감하게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너무 오래 들어서 그저 익숙해진 것을, 뭐라고 해야 할 지 몰라서,
이제는 그 익숙함에 좋고 싫음을 재 보는 것이 가능한가 싶어선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꺼내 듣고 위안을 얻으며
그냥 별 생각 없이 자분 자분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고,
딱히 귀를 예민하게 열어두고 집중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충분히 전해지는 듯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격렬한 음악보다도 훨씬 더 '단순하게' 마음을 진정시키고 숨을 편안하게 해 준달까.
거기에, 좋고 싫음을 재 보는 것은 왠지 어색하기도 하고 필요 없는 일처럼 느껴지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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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세월 알고 지낸 남편에게, 딱히 좋고 싫음을 떠나
이제는 그저 작은 손길 하나에도 편안함과 위안을 얻는 것처럼,
나의 사랑도 이제는 디스카우의 노래를 듣는 일과 비슷해 진 구석이 있다.
가끔은 임팩트가 적어졌다며 툴툴대기도 하지만,
사실 그 익숙함의 손길이, 세상 그 어떤 아픈 병도 치료해 줄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은 아닐까.
마침, 남편 덕에 간만에 갖게 된 음반이, 하필이면 그의 노래다.
남편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음반을 주문했을 리는 만무하나,
마치 그걸 알으라는 것처럼, 디스카우의 노래가 모처럼 가슴을 잔잔히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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