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29일
슈만의 사랑, 슈베르트의 미소.

   
   Enraptured by schubert's trio......... (11.30.1828)
 
   Home at 3:00am - excited night with Schubert's immortal piano trio ringing in my ears -frightful dream. (12.4.1828)

 - 슈만의 일기 중에서.






*

슈만이 슈베르트의 음악에 빠진 것은, 슈베르트의 마지막 해인 1828년, 그 해의 봄 즈음이라고 한다.
당시 라이프찌히에서 하라는 '법' 공부는 제쳐두고 문학과 음악에(만) 심취하여 살아가던
젊은 청년 슈만을 완벽하게 사로잡은 뮤즈,는 다름아닌 슈베르트였다.

슈베르트 생의 마지막 해였던 1828년, 그제서야 그의 이름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의 작품으로만 꾸며진 연주회도 유래없는 성공을 거둔다.
그 때를 전후하여 슈베르트의 작품들이 그제서야 슬슬 빈 밖으로 돌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싱싱한' 작품들을 Leipzig에서 받아들고 잠 못 드는 사랑에 빠진 것이 바로 슈만이었던 것이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해가, 슈만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맞닿아 있는 것은 행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젊은 슈만은, 자신과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다는 슈베르트의 음악에 숨도 쉬지 못한 채 음악에 빠져들며,
(thunderstorms with romantic rainbows spreading over the  solemnly slumbering world )


다른 음악가들에게선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그 안에서 만난다.
(When I play schubert, it is as if  I were reading a novel composed by Jean Paul.)


시의 세계, 이야기의 세계를, 내면을 펼쳐보여주는, 경계 없이 열려있는, 세상을
그는 장 폴과 호프만의 소설에서, 그리고 그와 동격의 음악인 슈베르트에서 발견한다.

슈베르트는 그의 열열한 사랑의 대상이자 모델이 되었고,
베토벤과는 다른 화법으로도, 그의 그늘에 가려 머리를 쥐어뜯지 않고서도
다른 방법으로, 다른 관점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 작곡가였다.

( 잘 알려졌다시피 슈만에게 베토벤과 다른 화법으로 '교향곡' 을 작곡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 바로 슈베르트의 great 교향곡이었다. 그 곡으로 인해 슈만은 교향곡을 작곡할 '희망' 을 얻게 되며, 자신과 통하는 '친근한 화법' 을 발견하고
모든 악기들이 마치 끊임없이 서로 '대화' 하는,  '시'와 '소설' 의 세계를, '천국같은 길이' 와 '열려진 창'을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
그의 실내악 창작에 불을 지핀, 그 문제의 immortal trio (D.926) 를 직접 귀로 듣게 된 것은  1828년 11월 30일과 12월 4일,
스승이자 미래의 장인어른인 Wieck의 집에서였다.
그의 감동과 충격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지경이었고, 슈만 역시 자신의 피아노 4중주를 작곡하기 시작하며
더 많은 슈베르트의 작품들을 만나보고싶어 안달이 난다.

그러나 베토벤을 평생 존경하면서도 만나지 못했던 슈베르트처럼
슈만 역시나 그의 'one and only schubert' (-Wieck에게 쓴 편지 속의 글귀) 를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

그해 11월 19일 오후 3시에 너무도 일찍 삶을 마감한 선배 작곡가 슈베르트의 임종 소식을 들은 슈만은
밤새 눈물로 범벅이 되어 울었다 하고, ( sobbed the whole night long. -  당시 룸메이트의 기록, )
슈베르트에 대한 사랑으로, 새로운 음악을 창작할 수 있는 길을 보았던,
그러나 그 작곡가의 새로운 작품은 더이상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 1828년의 12월을 마감하며
슈만의 일기는 이렇게 끝맺음을 하고 있다.


        ................. My Quartet  -  Schubert is dead -  dismay...


그렇게 작곡된 그의 첫 피아노 4중주 (c minor) 는, 마치 슈베르트의 E flat trio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의 온 마음과 귀를 놓아주지 못하던 그 작품의 영향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슈베르트의 트리오에 있는 모든 다양한 요소들을 슈만은 자신의 작품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실험하기 시작했고
그의 친구들과 더불어 슈베르트의 트리오와, 자신의 피아노 콸텟을  몇 년간 나란히 연주하였다고 한다.


슈베르트의 트리오에서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들을 발견하여 한껏 고무된 그는,
1830년에는 자신의 피아노 콸텟을 오케스트라 작곡으로 더 확장시켜 보겠다는 포부를 클라라에게 밝히기도 하지만
결국 그 계획은 실현되지 못한 채 그냥 남겨지게 된다. (몇 몇 오케스트레이션 창작 흔적들만 남아있다.)
아마도 슈만은 그의 첫 콸텟이 지닌 한계 (오롯이 자신만의 창작이라기보다는 너무도 슈베르트의 흔적이 직접

적으로 드러나보이는) 를 인지한 채, 세부적인 수정이 아니라 대대적인 공사가 아니고서는
출판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리라..



***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지난 1842년.
슈만은 젊은 시절, 자신을 사로잡았던 슈베르트의 음악에서부터 출발한 악상들을 두 곡의 피아노 퀸텟과 콸텟으로 완성시킨다.
각각 작품번호 44와 47.

두 곡 모두 그의 One and only Schubert 의 Immortal trio 의 조성과 똑같은, E flat major 인 것은 우연일까?

그 두 곡의 저 깊은 곳에서, 아름다운 메아리처럼 슈베르트의 E flat piano trio의 멜로디들과 리듬, 흔적들이
아스라히 들려오는 듯 하는 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마치 끊어진 다리를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매만지고 고쳐서 잇듯이,
그 두 작곡가의 음악은 아주 깊은 곳에서 부드럽고 깊게 손을 잡고 있다.
고전적인 영향들을 충분히 담아냈지만, 누구보다도 '슈베르티안'적인 화법으로,
그러나 이제는 충분히 그의 모습이 뚜렷이 박혀있는 이 작품들을 들으면서
그 무엇보다도 깊에 느껴지는 것은 '사랑' 이 아니고 무얼까.
삶에 대한, 자신의 열정에 대한, 세상을 향한, 음악에 대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그 모든 이름의 사랑이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 같은, 그런 존재로서 말이다.

길지 않은, 이라기보다는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간
너무나 민감한 더듬이를 지녔던 슈만의 작품은, 그러나 슈베르트보다도 훨씬 '건강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는 슈베르트가 가진 '천국과 같은 길이' 를 훤씬 더 논리적이고 꽉 짜여진 구조 속에서 간결하게 만들어놓았고,
희미한 과거 대신에 좀 더 명확한 현재의 모습을 강변하고 있는 듯 하다.
거의 대부분 '미래' 로 향하고 있는 베토벤의 시선에, 과거를 돌아보는 슈베르트의 시선을 보탠 듯,
그러나 그 두 작곡가 어디에도 눌리지 않은 채 현실의 튼튼함을 명확히 발을 딛고 서 있는, 따뜻한 애정으로 가득한 이 두 곡은
분명 슈만 의 보석 중의 보석일 것이다.
나는 그가 '미쳐서' 죽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
그의 그 모든 '사랑' 의 시작은 슈베르트에서 출발했고 그의 시선과 화법에서 자신을 찾아내는 일로부터 시작했다.
도플갱어에서처럼 종종 과거에 남겨진 자의 모습을 택한 슈베트트와 달리
슈만은 그것이 모순과 미치광이의 모습일지라도 현재를 떠안고 가는 길을 택하는 듯 보인다.
그것이 버거웠던 것은 아닐까
그의 작품 속에 끊이지 않고 언제나 '동시에' 등장하는 두 개의 자아가
슈베르트의 '천국과 같은 길이' 와, 과거로 향한 시선, 시간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방랑에서 위안을 얻은 것은 어쩌면 당연해보인다.
광기어린 현실같은 그의 빠른 악상들 사이에서 너무나 부드럽고 따사롭고 단순한 선율들을 만날 때마다
그것이 슈만 안에 있는 슈베르트에게 기댄 짧은 휴식처럼, 느껴지곤 하니 말이다.


*****
그를 가장 잘 이해하고 알아봐 주었다던 친구들에게조차  '가곡은 괜찮지만 다른 것은 좀....' 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슈베르트가
정작 가장 열망했던 것은 기악곡 작곡가로서의 성공이었다.
출판도 지지부진했거니와 평론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고, 제대로 된 공연을 가져본 적도 없거니와
관심의 중심이 되어본 적도 없는 그의 음악을, 
누구보다도 먼저 진지하고 열정적인 사랑과 찬사로 대접해 주고, 관심의 영역으로 끄집어 내 준 것이 바로 슈만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깊게 이해하고 있었던 두 사람,
그의 부인 클라라와,  그가 누구보다도 아꼈던 브람스, (두 사람 역시나 슈베르트의 열열한 팬이었다.)
그들 역시 그들의 선율 속에서 말 없이 깊고 부드럽게 서로 손을 잡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슈베르트는, 그렇게 그들의 음악 안에서
보일듯 말듯 미소를 짓고 있다.


그 안에서는, 더이상,  너무 많이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은 모습인 채.
그의 음악 그대로, 열려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영원한 모습처럼.




 

by 그림자놀이 | 2009/03/29 14:11 | 낭만주의자의 취향 | 덧글(2)
Commented by Levin at 2009/03/29 21:25
여전히 목소리 들어간 곡들은 대개 즐기지 않습니다. 전 아무래도 슈베르트가 가장 좋아할 만한 팬일지도 모르겠네요 :>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3/30 13:50
오호, 흥미로운 결론이군요. ^^

근데 정말로 슈베르트가 좋아할만한 팬,이 되려면 왠지 그의 오페라에 빠져야 할 것만 같은....(죽기 직전까지, 그 고생을 하면서도 버리지 못한 게 오페라 성공에 대한 꿈이었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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