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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우연의 일치인지 슈베르트도 베토벤도 똑같은 주제의 노래를 작곡한다.
당시 마흔 여섯의 베토벤은 '멀리 있는 연인에게' 라는 제목으로 6곡의 노래를 작곡하고
당시 열 아홉의 슈베르트 역시 다른 시인의 작품이지만 역시 '멀리 있는 연인에게' 보내는 마음을 담은 시에
곡을 붙인다.
그러나 베토벤의 노래와 슈베르트의 노래는 사뭇 느낌도, 그들이 인용한 시가 궁극에 다다른 지점도, 다르기만 하다.
And you sing, what I have sung,
What I, from my full heart,
Artlessly have sounded,
Only aware of its longings.
For before these songs yields,
What separates us so far,
And a loving heart reaches
For what a loving heart has consecrated.
베토벤이 '멀리 있는 연인에게' 전하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은 그렇게 그리움으로 서로 만나서 하나가 될 것이다, 그들이 그리워한만큼, 그 노래 안에서 만날 거라는
사뭇 희망적인 메시지다. 한없이 아름다운 그리움으로 충만한 그의 기착지는 희망의 확신이었다.
아마도 이 '경지' 는 슈베르트가 그의 생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안타깝게 만났던 경지가 아닌가 싶다.
돌려 말할 필요도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베토벤이 인생 선배여서 그럴 것이다.
열망의 좌절,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은 베토벤 역시 지독스레 겪었다.
끔찍하게도 귀가 멀었고, 죽음을 생각했고,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유서를 썼으며,사랑의 좌절도 겪고,
그럼에도 음악을 버리지 못했었다.
차이가 있다면, 베토벤은 그 상황을 견디며 꽤 '오래' (슈베르트에 비하면) 살았다는 것이다.
유서를 책상 서랍안에 꼭꼭 넣어두고, 불멸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도 꼭꼭 넣어두고 마흔이 넘도록 묵묵히 걸어온
고집스런 노총각이었다.
그것이 마흔이 넘은 그에게 이런 음악을 만들게 했을 것이다.
그리움과 열망이 떨어진 연인들을 결국엔 만나게 하리라.. 는 노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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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에 작곡된 베토벤이 '결국 그 그리움의 힘이 멀리 떨어진 사랑을 성취하게 만드리라.'라고 노래한다면
이제 고작 열 아홉이었던 슈베르트는 아직도 그리움 속을 안타깝게 헤매고 있다.
Where through the night the pines
gleam with a dusky glimmer,
I see you fleeing hesitantly,
beloved, airy figure!
When I reach out gently for you,
my arms lifted in yearning,
your phantom melts
and is wafted away like dewy mist
멀리 떨어져있는 그져를, 그저 상상 속에서 안타깝게 만나고, 문득문득 그녀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무엇을 잡아야 할 지 모르는 채 그저 안개 낀 곳을 헤매일 뿐이고, 안타깝게 부여잡은 것들은 환영처럼 사라져버린다.
이제 막 열 아홉이 된 그의 인생이 불확실성과 동경으로 얼룩져 절뚝거리듯 한 발 한 발 내딛듯이 말이다.
그 해에 그는 스승이었떤 살리에리와 결별을 하고, 첫사랑과 이별을 하며,
프리랜서 작곡가로 독립을 하지만 순탄치 못했고, 집을 떠나 친구 집에 얹혀 살기 시작하고
베토벤처럼 세 곡을 묶어 피아노 소나타를 출판하고 싶었지만 그 열망을 그는 죽기전까지도 이루지 못한다.
오직 음악을 하겠다고 독립했던 청년의 첫 해인 1816년에 그는 '멀리 있는 연인에게' 보내는 노래를, 두 곡씩이나 작곡한다.
음악도, 성공도, 열 아홉 청년에게는 잡을 듯 잡을 듯 잡히지 않고, 그저 희미하고 뿌옇게 존재하는,
그저 그리워 할 수밖에 없는 너무도 '멀리 ' 있는 연인이었던 탓일까?
그것은 고스란히 그의 열망과, 그리움, 안타까움을 대변하는 듯 하다.
(* 똑같은 시로 슈베르트는 두 곡을 작곡한다. 하나는 4명을 위한 곡(D.331)으로 또 하나는 솔로를 위한 곡(D.350)으로.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으며 1816년이라는 연도 기록만 남아있다고 한다..)
가사는 둘째치고라도, 네 명의 목소리를 위해 작곡된 이 곡은 무려 c shap major로 되어 있다. 샾이 7개나 달라붙은 조성이다.
공중에 둥둥 뜬 것 같은 아련한 그리움, 환영과도 같은 그리움과 불확실성은
그렇게 오선지 위에 샾을 7개나 그려놓고도 모자라서 네 명의 목소리를 가지고 떠돌듯 시작할 수 밖에 없었을까.
확신에 가득찬듯한, 베토벤의 사랑노래는 이 노래에 비하면 어쩐지 진리를 깨달은 자가 무릎을 치는 것처럼만 느껴지고
모범답안'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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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귀가 이제는 거의 들리지 않게 된 마흔 여섯의 베토벤.
유서를 쓰고도 삶을 마감하지 않고 마흔 여섯까지 묵묵히 걸어온의 베토벤은 도대체 어떤 길들을 지나왔을까,
그에겐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멀리 있는 연인' 이었던 것일까?
그는 그의 노래에서 지나온 가시밭길과 눈물을 말하지 않은 채, 멈칫거리거나 뒤 돌아보지 않은 채,
여섯 곡을 내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피아노 반주처럼, 그가 늘 그랬듯이 그저 묵묵히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속내를 말하지 않는 베토벤을 과연 '강하다' 고 해야 할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모든 길들을 지나 마흔 여섯까지 온, 좌절과 희망이 비껴가는 것들을 묵묵히 바라보는 이 '성깔있는 노총각' 을
그 순간까지 죽지않게끔 지탱하고 있었던 것은
청년 슈베르트와 마찬가지로 '음악' 에 대한 사랑과 열망 때문이었음은 다시 말해 무엇하겠는가.
베토벤은 나이 마흔 여섯에, 그를 그동안 지탱해 주었던 그 모든 사랑에 대해, 그 사랑에 대한 지치지 않은 그리움과,
그 그리움의 힘에 대해 그의 화법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열 아홉 청년이 도달하기에는 너무나 먼 경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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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마흔은 커녕 서른 언저리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슈베르트는
그 후로 그의 20대 십여년간을 계속 방랑과 그리움, 동경과 열망, 좌절 사이를 떠돌아 다닌다.
브렌델의 말처럼, 훌륭한 연주자도 아니었던 그가 홀로 우뚝 선다는 게 가능이나 했겠으며
이탈리아 오페라가 판치던 세상에, 갓 스무살을 넘은 청년이 쓴 독일 오페라 어떻게 공연장을 잡을 수 있었겠으며
피아노 독주회라는 게 (public) 점점 사라져가고 있던 빈에서, 전문 연주자도 아니었던 그가 무슨 수로 그의 피아노 작품들을
알렸겠는가.
고작 서른 한 해밖에 살지 못한 그는,
그저, 죽기 직전까지도 그는 그렇게 잡을 수 없는 것 같은 음악을, 그저 좋아서, 사랑해서, 붙들고 있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그리운, 멀리 있는 연인처럼 말이다.
그가 그 모든 번뇌와 절망에서 벗어난 것은 아마도 마지막 노래에서가 아닐까.
'백조의 노래'에 실려있는 하이네의 시를 인용한 노래들은, 고독과 방랑 그리움과 열망의 마지막을, 한 인간의 내면을,
슈베르트 본인과 꼭 닮은 마음들을 다루고 있다.
한 여인을 지독하게 사랑하지만, 그녀의 웃음이 아닌 눈물에 눈이 멀어버리고
온전히 행복해지는 길과 온전히 불행해지는 길 사이에서 교만했던 그는 결국 온전히 불행한 청년이 되며
열망도 그리움도 이렇게 선연한데, 그녀를 잃었다는 것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다고 부르짖으며,
궁극에는, 이미 떠나버린 지 오래 된 그녀의 빈 집 앞에서, 아직도 그녀를 그리워하며 서 있는 또 하나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소름돋는 마지막 노래, 도플갱어에서
자신 안의 또 다른 자아를 인지한 그의 노래는, 소름돋게 웅얼거리던 노래의 마지막을 잔잔히 장조의 코드로 맺고 있다.
마치 그 사실을 알아서, 이제는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듯,
과거에 그(자신)를 남겨두고 뒤돌아서는 발걸음은, 이제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듯.
아, 멘, 이라고 중얼거리는 듯... (마지막, 들릴듯 말듯 울리는 세 개의 코드는 아- 멘, 이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노래는, seidl의 시에 붙인 '우편 비둘기' 로 끝을 맺고 있다.
(세트로 작곡된 곡이 아닌데다가 하이네의 시와도 상관 없이 그저 출판업자 한슬링거에 의해 마지막으로 들어간 작품이지만
그의 '의도' 가 아니었다고 해도 이 노래는 그의 마지막 노래임이 틀림없다.)
그는 죽기 몇 주 전, 믿기 어려울만큼 밝은 선율의 '우편 비둘기' 에서 노래한다.
그리움과 동경, 그 모든 불가능을 이기고 지치지도 않고 달려갔던 그의 마음이
결국은 그의 예술을 성취하게끔 만들었다고 말이다.
*****
그리고 그의 그 마지막 노래에서, 나는 문득 12년 전의 베토벤을 만난다.
베토벤이 멀리있는 연인에게 전하는 노래가, 슈베르트의 마지막 노래의 다음장처럼 느껴지는 건 지나친 감상적 비약일까.
And so I cherish her truly in my heart,
Certain of the fairest prize;
Her name - Longing! Do you know her?
The messenger of constancy.
지치지도 않고, 늘 충실하던 비둘기를 소중히 품고
가장 소중한 것을 얻었음을 확신하는 그.
그 긴 세월동안 그의 충실한 마음의 메신저는 바로 그의 마음속 동경이었음을 노래하는 라는 슈베르트의 마지막 노래는
And you sing, what I have sung,
What I, from my full heart,
Artlessly have sounded,
Only aware of its longings.
For before these songs yields,
What separates us so far,
And a loving heart reaches
For what a loving heart has consecrated.
오직 나의 '그리움'으로 부르던 그 노래, 그 노래가 사라지기 전에, 그 노래 안에서
사랑하는 마음은 그렇게 그리움으로 서로 만나서 하나가 될 것이다, 는 베토벤의 노래와
맞닿아 있는 듯 느껴지지 않는가.
Schubert - Der Entfernten (D.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