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08일
슈베르트의 마지막 편지 - Die Taubenpost (Pigeon mess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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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전기를 읽으면서,
사실은 근자에 쓸쓸해지고 힘겨워지는 마음을 다스리려고 일부러 곱씹어 그의 음악을 꼭꼭 새겨들으면서도
아직까지 흔쾌히 꺼내 듣지 못하고 있는 곡 두 곡을 고르자면 '겨울나그네' 와 '미완성 교향곡' 이고
책 읽기를 끝내는 날을 기다리며 듣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곡을 한 곡 꼽자면 바로 이 곡이다.

피아노 반주가 살풋살풋 춤을 추는, 전혀 슬프지 않은 이 곡은 '바위 위의 목동' 과 함께
그의 삶의 거의 마지막(1828년 10월)에 작곡된 작품이며 그의 연가곡집 '백조의 노래' 중 제일 마지막에 실려있는 곡이다.


괜히 감상적인 상상을 하고 싶진 않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마지막을 예감했던걸까?
그는 이 마지막 한 해 동안을 믿을 수 없을만큼 '열심히' 살았고, 엄청난 작품들을 쏟아내었으며
평생 열망하던 그의 연주회를 열었고,
죽기 직전인 10월말과 11월에는 심지어 대위법 수업까지 들으러 다니다니 실로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다.

평생토록 음악과 연관된 '고정 직장' 을 그토록 원했던 그가 가장 열망했던 것은 바로 Kapellmeister가 되는 일이었고
그의 스승이었던 살리에리의 죽음 이후에 그 빈자리에
슈베르트는 누구보다도 먼저 열과 성을 다 해 작품 샘플들을 총 동원하여 지원을 했었다.
당시 second Kapellmeister이자 오르가니스트 자리에 그는 모두에게 '유력한 후보' 였지만
결국 재정상의 문제로 교회에서는 슈베르트를 '새로 고용' 하는 대신에 다른 인물에게 겸직을 허용하게 된다. 

제대로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때때로 그에게 어떤 '한계' 를 느끼게 했던 모양이다.
수많은 미완성의 흔적들은 그의 고뇌와 불확신을 담고 있고, 이 사건은 그에게 또 한번의 좌절을 가져다준다.
(젊은 시절 그는 꽤 오래 살리에리에게 배웠지만, 이탈리아인인 그가 슈베르트의 독일가곡과 오페라에대한 열정에 거의 반응이 없었다는 점 때문에 일찍 그로부터 독립하는 길을 택한다...)
그러나 이제 베토벤을 잇는 작곡가로서 본인의 입지를 확고히 굳히고 싶었던 서른을 갓 넘긴 이 젊은이는
아마도 좀 더 '프로' 가 되고 싶었던 것일테고,그 열망은 그로하여금 대위법 수업을 들으러 가게 만든다.


하지만,....믿을 수 없이 위대한 작품들을 그 해에 폭포수처럼 쏟아낸 그가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품고 아픈 몸을 이끌고 대위법수업을 들으러 가는 장면은
상상만해도 왠지 마음이 아파와서 애써 도리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단 한번의 수업 이후에, 다음 수업도 기약하고 떠났던 그는
병상에 눕게 되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
여름 이후로, 정확히 말하자면 10월부터는 병세가 눈에띄게 악화되었음이 분명하지만
느닷없이 심각해져서 하루종일 병상에 드러누워있던 것은 아니었고, 그의 일상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그의 친구들이 그의 죽음을 '충격' 속에 맞이했던 것도 그런 탓이다.)

다만 그가 편지에 자주 썼듯이, '가끔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곧 침대로 쓰러져버릴 것 같다' 는 느낌이
그를 이 한 해 동안 내내 휘감고 있었을 것이리라.


이 마지막 해에 그는 두 시인의 시집을 토대로 가곡을 작곡하게 된다.
Rellstab의 시집은, 한 해 전에 쉰들러의 손을 통해 베토벤에게서 슈베르트에게로 전달 되었었고
그 중 한 곡은 이미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주회 (베토벤의 1주기에 열렸던)에서의 연주를 목적으로 작곡되었다.
(테너와 피아노, 호른을 위해 작곡된 Auf dem Strom -D.943)


한편 그 해 1월에 있었던 정기적인 슈베르티아데 모임에서 새롭게 등장한 Heine의 시들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고
그 해의 여름과 가을에 걸쳐 본격적으로 하이네의 시에 의거한 노래들도 작곡하게 된다.

슈베르트는 끊임없이 이 두 작품들을 별개의 작품으로 나누어 출판해주기를 부탁했었다.
(실제로 두 시인의 시들은 하나로 묶기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해에 그가 좀 더 초점을 맞췄던 것은 피아노 트리오와 소나타등 기악곡 출판이었는데,
출판업자들은 기악곡들에는 는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작품을 되돌려보내거나 그저 훗날을 기약하거나,
일을 지지부진하게 끌고가기 일쑤였고, 대신 '노래'들을 보여줄 것만 지속적으로 요청하게 된다.
죽기 직전까지도 슈베르트는 여전히 '가곡 작곡가' 로서, '즐겁고 실용적인 피아노 듀오 작곡가' 로서만 알려진 탓이다.


결국 슈베르트 사후에 출판업자 Hanslinger는 렐스타프 시에 의한 곡 6곡과, 하이네 시에 의한 7곡을 묶고,
마지막에 이 곡을 묶어 총 14곡으로 만들어 '백조의 노래' 라는 사뭇 감상적인 제목으로 출판을 해 버린다.

그러니 '백조의 노래' 는 슈베르트 본인이 붙인 제목도 아니요, 심지어 같이 묶을 생각도 없었던 곡들이거니와
별개의 작품으로 출판하길 희망했던 작곡가의 열망을 간단히 무시해버린 처사임이 분명하다.

또한 마지막 곡인 'Die Taubenpost(우편 비둘기)'는
사실  렐스타프, 하이네, 두 시인의 시집 중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는 작품이니
더더욱 슈베르트의 의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채 끼어들어간 작품이다.
( 이 곡은 Seidl의 시에 붙여진 곡이며, 슈베르트 사후에 초연될 당시 그의 친구 vogl은 이 곡을 13곡의 렐스타프, 하이네의 곡들을 부른 후 앙콜로 이 곡을 불렀다고 전해진다.)


작곡가의 의도는 완전히 무시한 처사가 되고 말았지만, 
이 곡을 '마지막' 으로 넣어둔 Hanslinger의 센스에는 나름대로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다.
그가 의도적으로 만든 '백조의 노래' 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마지막 노래' 로서 이만한 곡이 또 있겠는가.
눈물 속에서 웃음지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절망의 노래를 있는 너무도 아련하고 순수한 희망의 노래를 말이다.



***
1828년 10월로 기록되어 있는 이 곡은, 그의 마지막 '노래' 로 여겨진다.
바위 위의 목동과 이 곡이 아마도 그의 마지막 흔적이라고 생각해 보지만
전자의 곡이 연주를 위해 헌정된 것이 분명한 작품이기에
나에게는 어쩐지 이 곡이 좀더 개인적이고, 좀 더 마음을 많이 담아놓은 마지막 편지처럼 느껴진다.

사실 이 두 곡 모두 마지막 흔적이라고 보기에는 슬픔과 어두움, 절망에서 저만치 비껴선
너무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들로 가득하여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백조의 노래' 하이네 시 파트에 있는 노래들과 비교해본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가사는 사랑의 메신저인 비둘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그의 마음을 전해주던 비둘기가 한마리 있었었다.
그 비둘기는 수많은 세월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충실하게 메시지를 전달해주었었다.
말 뿐만 아니라 그의 온 마음, 눈물까지도 지치지도 않은 채, 언제나 충실하게 온전히 다 전달해주던 비둘기.
그는 이제 그 비둘기를 온 마음으로 품으며 가장 소중한 것을 얻었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 비둘기의 이름은, loinging ! (그리움, 동경, 열망...)
가장 충실하고 진실한 마음의 메신저는, 바로  그의 마음 속에 있던 그리움(동경), 이었던 것이다.


 




그의 음악과 시가 결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그 어떤 시도 허투루 선택하지 않았던,
언제나 그의 마음의 울림을 대변하는 시들을 고르고 또 골랐던 그를 생각해본다면
그가 마지막으로 고른 이 시는, 그 자체로서 이미 모든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가 생의 마지막에 하고싶었던 이야기는, 그 지치지 않은 동경과 열망이 가져다 준 희망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것이 그의 삶을, 그의 음악을 단 한순간도 지치지 않고 지탱해주던 가장 큰 동력이었음을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의 마음, 그의 우편비둘기를 .




****
슈베르트가 그 짧은 생애동안 우리에게 준 것이 있다면,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아름다운 열망과 동경이다..
차갑고 쓸쓸한 세상 속을 평생 방랑자로 떠돌면서, 열망하지만 차마 잡을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동경을
슈베르트만큼 솔직하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준 이가 또 있었을까.


비아냥이나 자포자기, 분노와 절규만을 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착하게 살아라' 아름답게 살아라' 는 도덕선생님같은 말도 아닌,
그 모든 절망을 다 떠 안고 가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 모든 것을 보듬고 갔던 이가 또 있을까.


심지어 세상을 향한 그의 작별의 노래마저도, 절망이 아니라 그 긴 시간을 그를 지탱해 온 동경과 그림움,
그리고 놓을 수 없는 아련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악다구니같은 삶에서, 절망의 나락에서 애써 눈을 부릅뜨고 찾아낸 실낱같은 불빛이고
그 불빛마저 찾을 수 없는 순간에는 꿈 속에서 그려보는 찬란한 세상이니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나에게만 심각하고 나에게만 무거운' '나의 인생'이란게
결국은 그 희망하나로 버텨가는 것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의 전기를 덮으면서 마지막으로 듣고싶은 음악에, 의심할 여지 없이 이 곡이 떠올랐던 것은
실은 그의 음악이, 나에게 언제나 '우편 비둘기'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빈테라이제로, 도플갱어로 끝맺음을 하지 않은 그의 천성은
죽는 직전까지도 어쩌면 누구보다도 밝고 따뜻하였을 것이라고 믿는 탓이다..




 


*****
죽기 직전에, 무려 11일동안 먹기만 하면 다 토해내는 바람에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하였다, 고 말하면서도
그는 '제발 읽을 것들을 좀 보내달라' 는 눈물겨운 마지막 편지를 쓰고,
베토벤의 스트링 콸텟(op.131)을 연주해주길 부탁하고, ( 그의 친구들은 그가 죽기 3일 전에 슈베르트의 머리맡에서 이 곡을 연주한다. 그가 너무나 감동하여 친구들은 그의 병세가 악화될까 걱정할 지경이었다고....)
죽기 하루 전까지 침대에 누운 채 그의 오페라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가 죽기 전까지 버리지 못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곡을 들을때마다,  살풋 살풋 가벼워진 걸음걸이로 떠나가는 그의 작별인사를 듣고,
적어도 10월의 그 어느 하루, 그가 펜을 내려놓고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하며 편안히 웃음짓는 모습을 상상하고,
그리고 꾸러미를 챙겨서 대위법 수업을 들으러가는 그의 발걸음을 생각하고,
그의 삶, 그의 절망, 그의 희망을 생각하고,
이 곡으로 작별인사를 해 준 그에게 감사하고,
내 무게의 삶을, 힘든 짐들을 추스르며 나도 힘겹지만 한 발 한 발 발을 내딛고,
내 마음이 날아가는 그곳을 고개를 들어 바라보게 된다.


그 옆에서 슈베르트는 언제나 말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여줄 따름이다.
손을 내밀지도 않는, 신기루같은 모습을 한 채.
 


 

지치지도 않고 낙담하지도 않고 / 비둘기에겐 그 길은 항상 새롭네 /
칭찬도 보상도 바라지 않는 비둘기 / 나에게 참으로 충실하구나 /
그래서 진정으로 가슴에 품어준다네 / 가장 아름다운 것 얻었음을 확신하며 /
그 이름은? 그리움 / 그대는 아는가? 진실한 맘의 전령을.


She never becomes tired, she never grows exhausted,
The route always feels new;
She needs no enticement, needs no reward,
This pigeon is so true to me.


And so I cherish her truly in my heart,
Certain of the fairest prize;
Her name - Longing!   Do you know her?
The messenger of constancy.








 

by 그림자놀이 | 2009/03/08 14:37 | 낭만주의자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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