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01일
길을 찾는 자의 노래 - Schubert Piano sonata in A major D.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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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처럼, 그의 피아노 소나타 op.2와 op.10처럼 세 곡을 묶어서 출판하고싶어했던 슈베르트는
그의 생의 마지막 해, 죽기 두어달 전에, 세 곡의 피아노소나타를 작곡하고
그저 sonata1,2,3, 이라는 번호를 붙여놓는다.

죽기전까지 총 21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이미 출판된 소나타도 몇 곡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저런 번호를 붙여놓았을까, 마치 이 전에도 이 후에도 곡이 없는 것처럼.


이제는 저 세 곡을 따로 따로 듣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나에게는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라기보단 12악장의 소나타 한 곡으로 들리거나
혹은 삽화가 많은 소설책, 혹은 너무 오래도록 읽고 또 읽어서 페이지 몇장이 너덜너덜해진 책처럼 여겨지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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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다 그렇듯, 세 곡의 소나타 중 가장 먼저 마음을 홀랑 빼앗긴 것은 B flat major(D.960)소나타였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이 소나타에 어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계속 들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곡은 처음부터 그런 느낌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음악같은 그런 느낌.


시간이 지난 후에는 C minor (D.958)에 홀랑 마음이 빼았겨서, 한달 넘게 쳐보겠다고 용을 쓰다가
4악장 악보를 서너장째 넘기고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 4악장을 여지껏 기분 내키면 붙들다 놓았다 하는데, 여지껏 끝을 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유는 참으로 간단하다. - 너무...어렵다...

밥을 많이 먹고 힘 보충을 한 다음에 몸과 마음이 온전히 리듬을 타지 않으면 그걸 붙들고 4악장 끝까지 도저히 '질주' 를 할 수가 없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거냐, 말을 타고 어디까지 달려가야 하는건가, 끝을 알 수 없고 기착지를 알 수 없는 질주는
이를 악 물고 떠나는 도피같다.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계속 똑같은 템포를 유지해야 하는 왼손이 슬슬 아파오기 시작하거나 꼬이거나 늘어지기 시작하면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슈베르트를, 독하다고 생각하곤하고, 왠지모르게 기분이 울적해지거 화가나거나 한다.



*
그 두 곡의 중간에 끼어있는 A major (D,959)소나타는 그에비하면 왠지 버려두었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악장은 좀 느닷없었고, 2악장은 너무 센티멘탈했고, 3악장은 뜬금없었는데다가 4악장은 흔해빠진 멜로디를 가지고 너무 장황했다.


D.958의 강렬함과, D.960의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 사이에서 이 곡은 어쩐지 갑자기 밑으로 쑥 꺼져있는 것 같았고
뒤로 몇발짝 물러나있는 것 같고, 들쭉날쭉하는 듯 했고, 으르렁거리는 듯 싶고, 울렁거렸다.
mp3에 슈베르트의 마지막 세 소나타, 그가 명명한대로 1,2,3 을 연속으로 넣어놓고도
소나타 2가 나오면 늘 그냥 건너뛰어버리기 일쑤....였던 것은... 어쩌겠는가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두 곡 사이에서 움푹 꺼져있는 것 같았던 D.959 소나타가 느닷없이 다가온 것은,
한없이 쓸쓸하지만 독하게 질주하던 D.958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에 맞추어 씩씩하게 길을 걷다가 (이 곡에 발맞추어 가는 일은 너무도 쉽지 않은가.) 발을 헛딛었던 순간에 느닷없이 찾아왔다.


영화에선 그런 장면에 책을 다 떨어뜨리고, 멋진 남자를 만나게 되고 하던데
나에게 그런 로맨틱한 일은 일어나주지 않았고, 다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머쓱한 기분만 극에 달했는데
그 때, 멈춰지지 않은 mp3에서는 늘 그랬듯이 다음 트랙인 D.959 소나타의 1악장이 흘러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고,
머쓱함을 수습하고 떨어진 책과 커피컵을 수습하느라 미처 트랙을 건너 뛸 손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 때.
그 머쓱함과 당황스러움 속 몇 초간의 정적 이후에 들리던 1악장의 (내가 종종 멋대가리 없다, 고 말하곤했던) 그 도입부가 시작되었다.

딴 딴   , 따딴 딴 ,  등 뒤로 뚜벅 뚜벅 걷는 걸음걸이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머릿 속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그게 너무도 선명하게 말에서 내려와서 뚜벅 뚜벅 땅을 딛는 사람의 '발자국소리'로 들렸던 탓이다.


정신없이 눈이 시큰하도록 바람을 맞으며 달려가기만을 계속하던 958의 마지막악장이, 그 쓸쓸한 질주가 끝이 아니었다. 
아, 이 곡은 다섯번째 악장이구나, 여기서 이제, 잠시 멈춰서서 길을 찾기 시작하는구나,
그 생각이 머릿 속에 떠오르자 더이상 가던 길을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들으면서도 정을 줄 수 없었던 곡이었다.
그 곡이 오늘 갑자기 말을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그 이야기를 들어야했다.



*
두리번거리면서, 느닷없이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소리들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고, 끊임없이 내면으로 내면으로 향한다.
움푹 꺼지기를 반복하고, 도리질을 치고, 멈칫거리고, 애원하고, 그리고 숨죽여 흐느낀다.
그 모든 소리들은, 나에게 너무도 처절하게, '길을 찾고 있는 소리'들로 들려왔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버무려져있는 지, 이름을 붙이는 것은 고사하고 그것의 형태를 구별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집중해서 듣기 시작한 2악장에서는 유치한 센티멘탈리즘 대신 혼란과 절규를 들었고,
3악장에서는 뜬금없음 대신 씁쓸한 자조의 웃음을 보았고,
그리고 4악장에서는, 너무도 '아름답지 않은' 멜로디 때문에 결국에는 주체없이 눈물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13분가량이나 되는 이 악장을, 언제나 초반의 익숙한 멜로디만 듣고 꺼버리곤 했으니,
내 기억속에선 언제나 '아름답지만 참 흔하게 들리는 멜로디' 뿐이지 않았던가.
반 이상이나 남은 4악장의 뒷부분에 그리도 씁쓸한 고함소리들이 존재하고 있을 줄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미 떠나버린 버스에 손 흔들듯이, 그가 찾은건 길이 아니라 또 다른 벌판이고
현실이 아니라 꿈이고, 그 꿈이 주는 가질 수 없는 동경 뿐이었고, 그것에 대한 비명과 눈물 사이를 오가는 절규 뿐이었다.
유치하고 흔한 멜로디 가지고 너무 길게 늘여뺀다,고 생각하며 5분 넘게 듣지 못하고 꺼버렸던 그 4악장을
끝가지 들으며 결국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이 장황한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처음부터 (D.958의 1악장부터) 들으며 여기까지 왔기 때문일 것이다.

말을 타고 떠나버린 줄 알았던 독한 슈베르트가, 실은 멈춰서서 그보다 더 독한 마음들을 품어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
그렇게 듣기 시작한 이 곡, 가끔씩 1,2초씩 끊어지기를 반복하는 이 곡은
한없이 힘겨운 내면의 이야기로,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는 자의 힘겨운 길찾기로,
힘겹게 부르튼 발을 옮기는 걸음 사이로 돋다나는 새싹들로, 눈이 부신 하늘로, 눈물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힘겨운 길찾기 뒤에 듣는 D.960의 첫 악장,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b flat 은 이제 이미 현실의 것이 아니었다.
그 힘겨운 다리를 건너서 도달한 그곳에는, 그가 찾는 그 길도, 벌판도, 쫓기는 방랑도 존재하지 않았다.
현실에서의 숨찬 질주도(958), 머리아픈 길찾기도(959) 없는 그 곳은 그가 그리던 천국일까.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영혼
아프고 쓸쓸한 과거도 모두 흐릿하게 뒤로 남겨진, 그 곳에서는 눈물대신 미소가 가득했다.
왜 이전에는 이 곡이 그리도 슬프게만 들렸었는지.... (특히 2악장.)
다시 듣는 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는 슬프지도 우울하지도 않았고,
천국에서도 길을 찾지 못한 자의,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슬프지 않은, 이제는 그저 떠도는 것이 자유가 된 자의 노래로 들릴 뿐이었으니 말이다.



*
이 기나긴 이야기를, 이 세 곡이 '한 세트'임을 각인시켜준 그 날의 연주는 브렌델의 것이었다.

슈베르트가 '한 세트'로 작곡한 '사실' 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정말로 가슴 절절히 느낀 적이 있었던가?

실은 이렇게 이 세곡을 연달아 들어본 적도 거의 없었거니와
한 곡씩도 아니고 한 두 악장씩 떼어놓고 들을수밖에 없는 바쁜 일상이었기에
매번, 나를 떠미는 질주하는 일상과 닮아있는 D.958 소나타를 들으며 자조하거나, D.960소나타를 들으며 눈을 감곤 했다.

게다가 D.960만 떼어놓고 보면, 언제나 브렌델의 연주에 퉁퉁거리는 편이었었다.
굳이 택하자면 느리고 깊은 리흐테르의 연주를 좋아했고, 몽환적인 쉬프의 연주에 술 한잔 하기를 즐겼고,
켐프의 연주를 들으며 눈을 감았고, 가끔씩 차갑다고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우울한 날에는 폴리니의 연주도 제법 듣곤 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연주들 한켠에 서서, 왜 브렌델은 모든 슈베르트 연주를 다 귀신같이 잘해놓고 이 가장 중요한(?) 마지막 소나타를  이렇게 망쳐(?) 놓았느냐고 불평을 하곤했다.


그날, 그렇게 그 세 곡을, 하나의 긴 이야기로 완벽하게 만들어놓은 브렌델의 '노작'을 알아보기 전까진 말이다.




*
한주 전에 읽기를 마친 슈베르트 전기에는
그의 친구인 Grillparzer가 슈베르트에게 바친 시귀 하나가 마지막 페이지에 실려있다.


D.959소나타를 들으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것은, 우리네 인생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그 끝없는 길찾기와 방랑, 해답없는 질문들 속을 부유하는 가엾은 영혼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쓰디 쓴 눈물을 웃음으로 닦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 장황한 마음 속 이야기의 마지막을 D.959소나타가 아닌 D.960 소나타로 맺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릴적 짐작처럼 어른이 된다는 것이 삶의 해답을 찾는 일도 아니고
삶은 오히려 살면 살수록 어렵고 모르겠는 것 투성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의 마지막 피아노 소타타 세 곡을 찾아 듣는다.
그 곳에는 진흙탕의 심연과 천국이 공존하고 있고, 아픔과 동경이, 열망과 좌절이, 물음과 해답이 공존하고 있다.
어찌 매 번 그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디다 보여줄 수도 없는, 나 조자도 잘 모르겠는 그 내면의 어둡고 밝은 모든 구석 구석들을 열어 음표로 보여준 그를,
그저 천상의 영혼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I'm Schubert, and I claim
To answer to no other name.
I can only play my part
By honouring the highest art.
I can't command your presence here.
It's not my way to interfere.
If you praise, or if you blame,
That's all one, I shan't complain.
Do you like my path I tread?
Then fine, just follow where I 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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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놀이 | 2009/03/01 14:30 | 낭만주의자의 취향 | 덧글(2)
Commented by Levin at 2009/03/01 19:11
이게 뭐야 하고 지나쳐 먼 길을 걸어오다 문득 발에 걸리듯 우연하게 다시 눈치챈 그의 곡들이 수십번을 듣고 나서야 가슴 속에 손을 찌르듯 내미는걸 느낄때 나와 같이 고독하고 지친 엉혼이 이미 몇백년 전부터도 존재 했으며 설령 그와 내가 손잡을 일은 없다 하더라도 그 존재했다는 의미 하나만으로도 걷다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져 위로가 되는 서러운 울음을 흘리게 되어버리는게 결코 화려하게 어둡지도 완벽하게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단순히 수수하지도 못한 제 안의 슈베르트인것 같습니다. 아직도 제법 남았을 삶의 시간동안 그의 음악이 제 폐부를 가끔 관통하고는 하려나요.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3/02 15:21
덧글을 남기려다 winterreise를 꺼내 듣기 시작하고선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목소리 들어간 음악은 아직도 안좋아하시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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