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2월 05일
우연의 순간 / Schubert Piano sonata D.894
*
요즘 넋을 놓고 빠져있는 곡,(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본격적으로 연습한 건 이제 고작 1주...)

슈베르트 소나타 중 리흐테르가  젤 좋아한다는 곡,

1,2악장은 소리를 만들어내기가 너무 어려워서 중간에 좌절하고 4악장을 먼저 붙들고 1주일째 씨름중이다.


대부분의 슈베르트 소나타가 악보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은데
이 곡 4악장은 정말 물리적으로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다른 멜로디들, 다른 조성들이 펼쳐진다.
(정확히 한 장, 두페이지 분량씩 딱딱 떨어진다.)
그 두페이지씩을 조금씩 조금씩 쳐냈을 때의 만족감이란, 여느 다른 곡과 다를 바 없겠지만
그저 어느 한 순간만을 떼어놓고 무한 반복으로 연습한다 해도 질리는 줄을 모르겠다.
도대체 누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지루하다고 했던가!! (실은 내가 그랬다...--;)
'인내심 부족' 이라고 쉬프가 제법 냉정하게 말했지만, 내 생각에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잡아내지 못하는 탓도 있는 것 같다.
순간 순간의 아름다움으로 만들어내는 길이,를 감당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인생이 그런 것처럼. 그래서 인생사가 맨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
한국에서 조르디 사발 공연을 보던 중 인터미션 때였는데,
바로 옆 리사이틀홀에서 어느 피아니스트가 이 곡을 치고 있는 것을 모니터로 중계해 주고 있었다.
음료나 한 잔 할까 하고 나왔던 길은, 느닷없이 만난 이 곡 때문에 그대로 얼어붙은 채 모니터 앞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넋을 놓고 있는 나 때문에 "무슨 유명한 연주자가 연주하는거야?" 라는듯한 표정으로 내 옆에 서 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래 그리워했던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만난 것처럼
그 멜로디를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실은 사발 아저씨의 공연보다도, 인터미션의 소란스러움을 뚫고 들었던 이곡에 대한 느낌이 오히려 더 많이 남아있는 건 왜일까.
미처 끝까지 다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만났던 탓일까.

사발 아저씨의 2부공연, 매끄러운 부잣집 아들같은 헨델의 곡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연주의 질과 상관 없이)
마음 한 구석은 이 곡을 계속 듣고만싶어 자꾸 안달이 났고,
아쉬움만큼이나 이 곡이 언제까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만 같았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
어느 천년에 1악장부터 4악장까지 매끄럽게 쳐볼 수 있을까.
1악장은 그 깊이가 너무도 깊어서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소리를 만들어 낼 재간이 없게만 느껴진다...
피아노 앞에 앉을 때마다 건반을 어디까지 깊게 누르면 리흐테르처럼, 브렌델처럼 소리가 날까, 싶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좋다. 눈을 감고 자연스럽게, 나도 노래하듯, 이 곡을 쳐봤으면 좋겠는데
언제 그런 꿈처럼 아름다운 순간이 내게 찾아올까...
찾아오긴 할까?





4악장에서 젤 아름다운 부분.
두 아이가 장난치며 웃는 소리까지 우연히 녹음되어서 그런지 미스터치에도 불구하고 내 귀에는 마냥 좋게만 들린다. 
아름다운 순간은 그렇게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연히 찾아왔던 모양이다.....

Schubert Piano sonata D.894, 4th mov중에서..., played b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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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놀이 | 2009/02/05 13:05 | 낭만주의자의 취향 | 덧글(21)
Commented by 다음엇지 at 2009/02/05 13:17
말씀하신대로 아이들 소리가 좋은 역할을 하네요.
영상이 떠오르는 이쁜 연주 입니다. ^^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2/05 13:28
그러게요. ^^ 아주 적절한 순간(멜로디)에 애들 웃음소리가 들어간 것 같아서 듣다가 놀랐습니다.

실은 그런 백그라운드 효과 없이도 객관적으로 이쁘게 들렸음 좋겠습니다만 말이죠. --;
Commented at 2009/02/05 14:1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2/05 14:34
정말 좋죠? 마음에 오래남는 멜로디들인 것 같아요. 나중에 브렌델 아저씨 연주 들려드릴께요.
지금 올리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 (곡 자체가 너무 다르게 들려버린다는....--;;)
Commented by 엘리 at 2009/02/06 10:52
아우.. 좋은데요..
반복중~ ^^

대체 얼마나 배워야 이걸 칠 수 있는거예요..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2/07 13:29
thanks~

저는 5살부터 15살까지 레슨 받았었으니까... 음... 이도 못치면 돈이 아깝지요....^^;;
Commented by 나디르Khan★ at 2009/02/09 14:01
반짝반짝 작은 별들이 아롱거리네요.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2/10 14:41
아들놈 둘 말입니까? ^^
Commented by 나디르Khan★ at 2009/02/10 17:06
앗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그림자놀이님의 화술! 아들분에 사랑스러운 연주까지 더해지니 이 어찌 좋지 않겠습니까 ㅋㅋㅋㅋ
Commented by Lucienne at 2009/02/13 18:46
와... 상당히 잘 치셔요... ^.^ 1주만에 이런 음이 나올수도 있군요...

저두 취미삼아 베토벤 소나타 다시 레슨받기 시작한게 이제 두달정도 되었어요 ^0^!!
가끔은 베토벤이 미워지기도 하지만 -_ㅜ (오늘은 정말 미웠습니다ㅜ)
생각해보면 나의 바보같은 손을 미워해야지 왜 베토벤을 미워하나 싶습니다...;;

아가들 웃음소리 너무 예뻐요 ㅠㅠ 아름다운 음악 듣고 자라고 있는 아가들^ㅅ^
흙 밟고 상추심고 동물 예쁘게 기르는 것만 가르쳐주면 정서교육은 특별히 신경 안써주셔도 될 것 같아요... >.<
(제가 가정교육 전공이라 이런것만 생각나는지..;;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2/15 05:48
lucienne님, 감사합니다. ^^ 레슨 받으신다니 부러워요... 혼자 하려니 저는 여간 끙끙스러운게 아닙니다..--
요즘 제 컴으로 이글루가 전혀 접속이 되지 않아서,...... 어찌어찌 들어는 왔는데 덧글쓰기도 안되네요. 암튼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2/15 05:48
lucienne님, 감사합니다. ^^ 레슨 받으신다니 부러워요... 혼자 하려니 저는 여간 끙끙스러운게 아닙니다..--
요즘 제 컴으로 이글루가 전혀 접속이 되지 않아서,...... 어찌어찌 들어는 왔는데 덧글쓰기도 안되네요. 암튼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09/02/18 22: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Lucienne at 2009/02/18 22:40
그런데 왜 이글루가 접속이 안될까요?ㅠ,ㅠ
그림자님 글 보러 종종 들어와서 확인한답니다♡
하지만 스토커는 아니예용...;; 흑 ㅠ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2/19 04:41
이유가 뭔지 모르겠는데, 저희 집에서만 이글루와 네이트가 접속이 되질 않아요. 다른데는 다 잘 열리구요...

전 첨에 이글루 장애인가 싶어서 한 며칠 놔뒀거든요. 그랬다가 얼마 전에 남편 학교 도서관에서 접속했더니 잘 열리더라구요?
그래서 장애가 해결되었구나, 싶어 다시 집에 와 시도하니, 여전히 이글루와 네이트만 먹통....
이글루 관리자에게 메일을 보내서 문의해 보았는데, 아직 답장은 없구요..(한 4일 되었나...) 이렇게 특정 사이트만 안열리는게 처음이라 뭐가 문젠지 잘 모르겠네요.

지금은 임시로 proxy 뭐시긴가로 해서 가끔 들어오고는 있는데 글쓰기도 안되고, 덧글만 (답글은 안되더라구요) 쓰고 있습니다.
뭐 보이는 페이지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신경쓰자니 요즘 많아 바빠서... 걍 냅두고 있어요. ^^;;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2/19 04:41
이유가 뭔지 모르겠는데, 저희 집에서만 이글루와 네이트가 접속이 되질 않아요. 다른데는 다 잘 열리구요...

전 첨에 이글루 장애인가 싶어서 한 며칠 놔뒀거든요. 그랬다가 얼마 전에 남편 학교 도서관에서 접속했더니 잘 열리더라구요?
그래서 장애가 해결되었구나, 싶어 다시 집에 와 시도하니, 여전히 이글루와 네이트만 먹통....
이글루 관리자에게 메일을 보내서 문의해 보았는데, 아직 답장은 없구요..(한 4일 되었나...) 이렇게 특정 사이트만 안열리는게 처음이라 뭐가 문젠지 잘 모르겠네요.

지금은 임시로 proxy 뭐시긴가로 해서 가끔 들어오고는 있는데 글쓰기도 안되고, 덧글만 (답글은 안되더라구요) 쓰고 있습니다.
뭐 보이는 페이지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신경쓰자니 요즘 많아 바빠서... 걍 냅두고 있어요. ^^;;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2/19 04:43
답글은 왜 두개씩 달리고 지워지지도 않는건지..--;;

베토벤은, 피해갈 수 없는 산인 것 같습니다. 바흐는 피할 수는 있는데 피하면 안되는 거 같구요...
(죽어라고 바흐 붙들고 있었더니 확실히 손이 많이 부드러워진 걸 몸소 체험하겠더라구요. ^^)
Commented by 엘리 at 2009/02/19 14:14
왜케 새글이 없으신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달이면 이번 프로젝트도 끝나는데.. 피아노 배우러 가야지~~ 하고 있습니다. ㅎㅎ
아들 손 잡고 피아노 배우러 다니려구요 . ㅋㅋ
솔이가 피아노를 좋아해 줬으면 .. 좋겠네요.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2/26 12:42
힘내세요. 시작이 반, 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
Commented by Lucienne at 2009/02/20 01:43
아가들 좋은거 먹여주고 놀아주고 재워주는 것도 벅차실텐데....
제가 동생이랑 나이차가 9살이나 나기 때문에 아가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주 조금은 알거든요ㅠㅠ
그 와중에도 열심히 연습하셔서 손까지 부드러워지셨다니 멋져요...
전 아직도 삐그덕 삐그덕... 한참 치던때의 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의심스러워요... (글썽)

그런데 이글루가 안 열리는건 인터넷 설정 자체의 문제일 것 같은데...!!
좋은 답변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9/02/26 12:43
객관적으로 부드러워졌다는게 아니라 그냥 예전보다 좀 나아졌다는거죠 뭐. ^^
먹이고 놀아주고 재워주고는 둘째치고, 먹이는 것만으로도 벅찬 나날들입니다. (아들 둘이다보니 먹성들이 먹성들이 장난이 아니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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