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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여러 해를 들었는데도, 이 소나타를 들을 때는 언제나 낯설고 충격적인 기분에 휩싸인다.
반복적이고 강렬한 리듬, 그 속을 뚫고 나오는, 처연하고 중독적인 멜로디.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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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에 악보를 보고 쳐보려고 했는데, 연습실에서 피아노만 이 곳 저곳 옮겨다니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기교가 문제가 아니라 (2악장 같은 경우은 오히려 손 작은 나에게는 옥타브가 별로 없어서 그리 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도대체 음색을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페달을 이리저리 밟아보면서 '대충이라도 좋으니 엇비슷하게 뭉개보려고' 생 떼를 써도 안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슈베르트 소나타가 사실 '좋은 피아노' 를 사용하여 대단한 노력 없이는, 대단한 재주 없이는 소리 내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이 곡(특히 1악장)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을정도로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구슬러도 마음을 열지 않는 고집스러운 친구처럼, 그렇게 나에게 벽을 쌓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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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내가 좋아서 하고 있는 일이지만,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외로워질 때가 있다.
그래도 좋은 걸 어떻게 하겠냐면서 악보를 보고, 소리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그 안에서의 대화를 꿈꾸지만
그래도, 그걸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슬퍼질 때도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예전에 사귀었던 그는, 나에게 매 번 피아노를 쳐보라 했었다.
가요와 팝송과 쟁가만을 들었던 그였지만, 내가 뭘 치는 지도 몰랐지만, 늘 나보고 피아노를 쳐보라고 했고
내 피아노 소리가 참 좋다고 옆에 앉아서 맞장구를 쳐 줬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좋은 추억은 그거 하나다.
생각해보니 그 즈음에는 과 동기들도 가끔 나를 데리고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가서 아무거나 쳐달라고 한 적이 많았었다.
클래식도 쳤고, 가요도 쳤고, 함께 노래도 부르는 나날들이 꽤 되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들이 내 어깨에 간혹 손을 얹고, 함께 몸을 흔들어주는 것을 너무도 좋아했었다.
지금은 어쩌다가 혼자 골방에서 피아노를 치는 신세가 되었을까.
남편도, 아이들도, 아무도 관심 없는 소리는 쓸쓸하기만 하다.
둘째가 유치원에 가면, 어떻게든 레슨을 받으려 하는 건, 좀 더 잘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작은 연주의 기회라도, 소통의 기회라도 얻고싶은 절박함이다.
그것을 '절박함' 으로 알아 줄 사람이 있을까. 있으면 매일매일 맛있는 걸 만들어 주고 싶어질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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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같은 얼치기 연주자도 이럴진대, 본인의 곡이 공연장에서 제대로 연주되는 걸 들어본 적도 없는,
하물며 변변한 본인의 피아노도 가져보지 못한 슈베르트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쓸쓸함을 감히 짐작 할 수 있을까.
길을 걸으며 이 곡을 들으면, 그 기분이 느껴진다. 아무도 내 연주를 들어주지 않아도, 그래도 사랑하는 걸 어쩌겠냐는 소리.
벌판에 버려져 있는 거대하고 외로운 영혼의 감춰진 눈물을 보는 것처럼, 그의 벗은 맨발을 보는 것처럼.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할 수 없는 영혼을 보는 것처럼. 가까이 가기에도 잊어버리기에도 힘든.
어디 돌아갈 곳도 없고, 머무를 곳도 없는, 함께 할 자도 없는, 그는 그저 석상처럼 서있을 뿐이다.
그저 세월이 비껴가는 것을 바라보며. 불가능의 꿈을 꾸면서.
브렌델 아저씨의 장점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물흐르듯 소리가 흘러간다는 것.... 변화무쌍함이 전혀 어색하거나 거슬리지 않게 , 그저 폭과 높이를 달리 해서 흘러간다. 노래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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