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0일
건반 위의 네 손 - Schubert Fantasy in F minor(for 4 hands) D.940
*
두 대의 피아노가 아니라 한 대의 피아노에 두 명의 연주자가 앉아 연주할 때
둘 사이의 물리적 간격은 아주 좁아진다.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눈을 마주보지 않고서도 호흡을 맞춰야 하고 느낌을 공유해야 하며,
종종 어깨나 팔을 스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때에 따라서는 두 연주자의 손이 어쩔 수 없이 교차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연주를 하며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었다 풀었다 해야 한다.

유독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을 많이 남긴 슈베르트는 아마도 이 물리적 간격을 없앤,
약간은 에로틱한 연주를 즐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의 (여)제자들과 친구들과 즐겨 연주하기 위한 개인적인 목적으로 작곡했다고 하니,
그 '나란히 앉아서 호흡을 맞추는 즐거움'을 배제한 채 레코딩으로 듣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을, 그는 상상이나 했을까?

그의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을 듣다보면,
이건 그저 듣기만 해서는 절대 모르는 비밀의 영역이 있을 것 같아서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듣기만 해서는, 도저히 그 곡의 즐거움을 절반도 다 느끼지 못하겠는게다.

그러나 악보를 들고 피아노 앞에 몇 십년을 앉아 있는대도, 같이 연주할 사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혼자 죽을힘을 다 해 연습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좌절스러운 일이다.
기교가 어려워서 치지 못하는 곡에 대한 아쉬움은, 이것에 비하면 자그마한 티끌같은 것이리라.

슈베르트는 그렇게,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또 어려운 일,
마음에 맞는 동반자를 옆에 두고 그 타인과 호흡을 맞추며 희노애락을 함께 느끼는 일을, 숙제처럼 남겨 놓았다.

레코딩으로 들으라는 곡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과 연주하며 즐기라,고 작곡한 그의 수많은 피아 듀엣곡들이
'인기없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
그의 네 손을 위한 곡들을 들으면, 은밀하지만 열정적이고 농후한 사랑이 보인다.
수줍고 소심한 사람에게는 연습과 연주를 빙자하여 이만한 데이트도 없었을 것이다.
듣는 것도 이런데,  마음에 둔 사람을 옆에 두고 이 곡을 연주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사랑의 희노애락을 다 담은듯 묘하고 짜릿한 이 곡을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번 빠져들게 된다.
마치 마법과 같아서, 전혀 모르는 사람과 연습하고 연주를 해도 사랑에 빠져버릴 것 같은데....

슈베르트는, 누구와 이 곡을 연주했을까.










남, 녀가 연주하는 장면을 상상했던 나에게 유튜브가 적당한 영상을 제공해주었다.(게다가 여자가 미인이기까지...^^)

연주 실력도 상당하거니와 둘의 호흡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맘에든다.
중반부에 폭풍같은 부분을 너무 스르르 넘어간 것이 아쉽긴 하지만,
두 사람이 마치 춤추듯 몰입하여 연주를 즐기고 있음이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보는 내내 즐거웠다.




by 그림자놀이 | 2008/12/10 21:43 | 낭만주의자의 취향 | 덧글(5)
Commented by hkmade at 2008/12/11 11:06
전 만약에 하영이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면 꼭 같이 다니고 싶어요. (아니면 집에서 딸네미에게 가르쳐 달라고 해야겠네요. ^^)
주신 덧글 덕분에 열심히 모유수유하고 있답니다. 감사드려요. ^^
(그래도 아내가 힘든건 사실이니 옆에서 보기가 안쓰러운건 사실이에요.)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8/12/12 10:54
가족끼리 뭘 가르치고 배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으실걸요? ^^
(성질이 먼저 앞서나간다는...--;)

그래도 아빠랑 딸이 함께 피아노치는 건 정말 아름다운 장면일 것 같네요.
엄마와 아들, 보다는 왠지 그림이 좋아보일 것 같다는...
Commented by SvaraDeva at 2008/12/11 17:08
아 정말 좋으네요. 게다가 여자가 미인이기까지!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8/12/12 10:55
옆에 아저씨가 화면에 잘 안 나오는 것도 한 몫 하구요. ^^;;;;;;;;;
Commented by SvaraDeva at 2008/12/12 13:10
ㅎㅎㅎ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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