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15일
Schubert - Wanderer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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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델이 연주한 베토벤 소나타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뭔가 깔끔하게 떨어지면서 카리스마 있는, 짱짱한 소리를 들려주는 베토벤이라기보다
왠지 아주 조금... 유약해보이고..  멜로디가 흘러가는 베토벤이었기 때문이었다.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잘 듣지 않았으니 이 기억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탓인지 반대로 그의 슈베르트 연주에는 아주 많이 호감이 갔다.
흐리멍텅하고, 나온 멜로디가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해서 일말 지루해지기 쉽고, 꿈꾸는 것 같은 슈베르트에게
브렌델은 적절이 악센트를 넣고, 힘을 불어넣어주고, 나사를 조여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처음 그가 연주한 슈베르트 소나타를 들었을 때는
베토벤 소나타 연주하는 그 방식 그대로 슈베르트 악보를 가져다 친다, 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었고,
베토벤 소나타에서는 어쩐지 짱짱하게 조여놓은 베토벤에게 나사 몇 개 풀어놓은 것 같아서 그 방식이 맘에 들지 않더니,
슈베르트로 돌려놓고보니 참으로 적절하다는 (슈베르트에게는 다 풀린 나사를 몇 개 조여 준)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물론 베토벤과 슈베르트 곡을 대하는 브렌델의 방식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더듬 더듬 그의 책을 읽으면서 이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셈이고,
무지와 편견으로 가득한 '단순 애호가' 의 귀라는 게 참으로 팔랑귀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지만,
어쨌건간에 지금도 여전히 그의 슈베르트 연주를 좋아하는 것은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배분된 그 자연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
브렌델의 슈베르트 연주 중에서 젤 좋아하는 연주라면 바로 이 곡이다.

리흐테르는 너무 어둡고 무거웠고, 폴리니는 딱딱하고 차갑기만 해서 좋아하지 않았는데다가
사실 나는 이 곡을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기 위해 연주하는 것은 질색중에서도 딱 질색으로 여기는 터다.
(얼마 전에 랑랑의 연주를 듣고, 보고,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음악만 듣기에도 거북했는데, 영상으로 보고나서는 더더욱,.,,,!!!!!)

엄청난 힘을 요하면서도 중간 중간, 절뚝거리듯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슈베르트식 몽유병 멜로디는 여전하다.
그 다이나믹을 잃지 않으면서 흘러가는 멜로디를 자연스럽게 잡았다가 또 다시 활화산처럼 타오르다가 또다시 몽환으로 빠져드는
그 울렁거리는 완급조절을 , 그 다양한 색채와 분위기를 한데 묶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방랑하도록' 만드는 것,

그래서 한 번 듣기 시작하면, 어디로 흘러갈 지도 모르는 그  길을 숨도 못 쉴 정도로 빠져든 채 따라가게 만들어버리는 것은
이 곡이 지닌 악마적 매력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새 두려움은 호기심이 되고 꿈같이 흐르는 유혹의 멜로디에 나도모르게 손을 내밀어 잡게 되는 것.
수줍은 자가 건네는 마약은 위험하고 달콤하다.




***
오직 악마만이 이 곡을 연주할 수 있을거라던 슈베르트의 말은, 어쩌면 단순한 기교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 곡이 주는 그 분위기, 그 숨막히는 환상의 이편과 저편, 어디로 갈 지 모르는 발걸음에 빠져들어가게 만드는 것들,
거친 으르렁거림과 욕망, 쓸쓸한 방랑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꿈결같은 선율.

악마가 아니고서야, 어찌 다 잡아낼 수 있을까.












..................................이 곡은 이렇게 한 부분만 떼어놓고 들으면 안 되는 곡이지만, 어쩔 수 없이 첫부분만...
2악장은 사실 근자에 포스팅 하기도 했거니와......






그의 책을, 밑바닥 영어실력으로 어렵게 보고는 있지만 매우 재밌게 읽고있는 중이라 이 영상을 구해볼까, 하였는데,
독일어 발음 들으면서 영자막 보는 일은 무리데스......



by 그림자놀이 | 2008/09/15 14:39 | 낭만주의자의 취향 | 덧글(6)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9/15 16:51
현역 중에 최강의 전방위 피아니스트... (라고 해도 바로크는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사실 브렌델은 모짜르트를 제일 먼저 들어봤는데, 하필이면 라이센스, 그것도 캐허접으로 만들어진 음반이라 거의 슈나벨 녹음 수준의 음질이어서 좌절했던 기억이...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8/09/16 03:32
그러니 은퇴하시기 전에 봤어야 하는 건데....(제작년 프로그램이 슈베르트랑 하이든,모짜르트었거든요..)
그나저나 슈나벨 수준의 음질이면 나름 고즈넉하게 즐기셨을 듯... ^^
Commented by Lucienne at 2008/09/15 18:05
항상 느끼는 거지만, 그림자놀이 님의 표현은 정말 멋져요^^
음악을 정말 좋아하셔서 많이 들어보신게 마구 느껴지고
또 음악의 본질을 꿰뚫는 듯한 해석이 너무 좋아요..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8/09/16 03:33
음악을 좋아해서, 까지는 맞는데 많이 들어본 것도 아니고 본질.. 운운할 정도는 더더욱이나 아닙니다. --;
과찬이세요...
Commented by 나디르Khan★ at 2008/09/15 18:30
오호 슈베르트 추천음반인가요 ;ㅁ; 감사히 잘 듣겠습니다.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8/09/16 03:36
나름 추천입니다. ^^
슈베르트 싫어하는 사람도 이 곡은 나름 cool 하다고들 하더라구요. (....cool 하다는 말엔 동의할 수 없지만...)
암튼.... 날씨 따라서 마음도 슬쩍 쌀랑해지니까 자꾸 듣고 싶어지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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