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13일
세련되지 않은 화법, 그러나 매력적인 수줍음....Schubert Symphony NO.5-1
*
이 곡의 사랑스런 멜로디를 꽤 오래 좋아해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뭐랄까, 마냥 사랑스럽고 따스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슈베르트의 곡들이 주는 느낌들이 대략 그렇지만, 뭔가 주저하는 듯, 망설이는듯한 머뭇거림이 숨은듯한 느낌 때문인지
뵘의 연주는 너무 평범하게(솔직히, 지루하게, 단조롭게..) 들렸고
발터의 연주는 서늘한 것을 애써 묻어두고 따스하게 만들어놓은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들렸었다.

올 봄에 차 안. 라디오에서 그나마 "어머, 그래, 이 느낌이야! "하는 연주를 들었는데
배고픔을 무릅쓰고 기다렸다가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귄터 반트의 지휘였다.
간신히 ,Gunter Wand , 이름을 알아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람 이름, 오케스트라 이름, 무지하게 빨리 발음하는 터라 긴장하고 듣지 않으면 놓치기 일쑤다. 발음이 영 이상한 것도 있고...)
어쨌든 그 연주는 그나마 꽤 마음에 달라붙어 두고두고 생각이난다.


**
가끔 생각해보면, 슈베르트 음악을 듣는데는 꽤 많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것 같다.
멍하니 있다보면 어떤 선율이 언제 나왔다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도무지 모르겠을 때도 많고,
피아노 소나타들을 듣고 있다보면 그 반복구 때문인지, 집중없이 들으면 매양 거기가 거기같이 뱅글뱅글 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요즘은 그게 마치 슈베르트의 어리광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마치,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이,
무턱대고 내 이야기를 좀 집중해서 들어달라고,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하나....
그렇다고 딱히 속내를 다 드러내지도 못할거면서 빙빙 돌려가면서 핵심은 말해주지 않는 것처럼... 약간은 어수룩하게..

어쨌거나 좋아하는 곡인데 맘에 딱 달라붙는 연주를 찾지 못하고 있어 애석했는데
올 초에 라디오에서 만난 귄터 반트의 연주가 일단 맘에 들었고,
며칠 전엔, 그보다도 더 마음에 착 달라붙는 연주를 발견했다.

물론, 이 연주를 구할 길은 영원히 없겠지만, 이 한토막만으로도 왠지 충분히 만족스런 기분이 든 건 왜일까..



play누르세요

이 한조각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그래도 전곡을 다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을 했다.
유튜브에서 본 그의 다큐멘터리 중에 들어있는 장면이다. 젊은 굴드의 , 음악에 대한 생각들과 삶의 모습을이 알차게 담겨있는 영상 같다.
영상은 여기에


 



***
굴드는 슈베르트에 대해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었는데
열정과 수줍음이 공존하는 그 둘은 은근히 닮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퍼뜩 했다.
아무튼 그의 피아노소리와 허밍은 묘하게 그 두가지를 아주 직접적으로 동시에 들려주고 있었고,
수줍음을 뚫고 나오는, 그러나 살짝살짝만 보일듯말듯한 그 머뭇머뭇하는 열정의 모습,
잘 숨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잘 드러내지도 못하는, 숫기없는 듯한,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이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왜 그동안, 나무랄데 없이 매끈하고 사랑스럽고 차분한 뵘의 연주가 나에게는 그렇게나 밋밋하고 지루하게만 들렸는지 알 것도 같고 그랬다.

마치 오랬동안 짐작만 했던 것에 대해 "아, 맞다, 그 사람, 그 때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하고 문득 무릎을 치는듯한 느낌.
그걸, 슈베르트에 별로 흥미가 없다던, 왠지 어울림이 좋게 보이지도 않았던, 굴드의 한토막에서 예상치 못하게 발견하고보니
혼자 비밀을 캐낸것마냥, 마음이 왠지 모르게 명랑해진다.




뵘 아저씨와 빈필,

흠잡을데 없이 매끄럽고 아름다운데, 너무 모범생 같아서 왠지.... ...(어려움없이 자란집 장남같은...)



****
어젯밤엔 노다메 때문에 슈베르트 소나타 D.845를 오랜만에 들으니, 거기에도 역시 비슷한 느낌들이 숨어있는 것 같다.


그러구보니 매번, 폴리니와 슈베르트의 어울림이, 좋게 들리지 않은 이유를 알 것도 같다는 생각...
그는, 슈베르트를 연주하기에는 너무 빈틈이 없다.
그것은 아무래도 삶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지도..
.........

 

*****
낯선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좀더 영악해지고 세련되게 살 필요가 있다고 뼈저리게 생각하고 있고,
그러니 물러터지면 안된다고, 어리숙해서도 안된다고 억지로 억지로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슈베르트에게 자꾸만 끌리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노력만큼 삶의 방식이 바뀌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큰일이다.

 

 

by 그림자놀이 | 2006/12/13 08:53 | 낭만주의자의 취향 | 덧글(10)
Commented by Levin at 2006/12/13 09:57
이제 슈베르트 하면 맛있게 닭다리를 뜯고있는 그림 생각이 나는군요 :)

저는 방금 우연하게 제 오디오의 디스토션을 줄이는 방법을 발견해서 폴리니의 슈베르트를 다시 듣고 있습니다. D.960은 아끼고 먼저 D.958과 959를 잔뜩 들으려고요. 음반의 장점은 역시 몇번이고 계속 들을수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비교하면서 들으려면 아무래도 더 많이 들어봐야 할것 같아요. 그래도 꽤 좋은 느낌이네요. 사실 브렌델이나 폴리니 같은 심각한 완벽주의자들의 음반은 뭐가 되었든 별 걱정없이 들을수 있는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굴드의 딴짓은 여기서 좀 심하게 크게 들리는군요 (녹음할때 신경 안쓰고 집어넣었나보네요). 꼭 술집에서 주정뱅이가 혼자 신이나서 멋대로 연주하는 느낌이라 미소를 짓게 하네요.
Commented by Hagen at 2006/12/13 10:02
뵘 연주가 어려움 없이 자란집 장남같다는 말씀이 참 인상적입니다...^^ (제가 괜히 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차르트나 베토벤은 철저히 그러하지요. 그런데 그 사람은 이상하게 라이브 공연과 오페라에서만은 스타일이 돌변합니다. 오르페오에서 나온 브람스 1번 등 몇몇 라이브 녹음들이 그러하고 1967년 링을 비롯한 바이로이트에서의 바그너 연주들, 그리고 R.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연주들이 그렇지요.
제가 뵘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늘 어떤 틀 속에서 모범생처럼 지내다가도 필요에 따라 <해까닥>하는 광기와 열정을 보여준다는 것이에요.
그림자님이 들으시기엔 그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으셨다니 모범생의 가끔씩 하는 <해까닥>으로도 성에 차진 않으셨나 봅니다...^^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6/12/13 10:11
levin / 그냥 집에서 대화 도중에 연주하는 장면입니다. 평소에 굴드를 많이 좋아한 건 아니었는데, 저 장면을 보면서는 머리가 띵해지더군요. 누가 제 앞에서 저렇게 연주해 주면 아주 기절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폴리니옹의 슈베르트는, ..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건 좋은데 어떤 건 어울림이 좋지 않게 들렸습니다.
그가 연주한 845와 방랑자 환상곡, 945 연주는 꽤 좋아하는데, 마지막 3개의 소나타는 왠지모르게 들을때마다 상당히 아쉽더라구요.... 개중에서도 960은 매번 뭔가 너무 아쉬워서 잘 듣지 않습니다.... 여백의 미, 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은데, 그 빈 곳들을, 폴리니는 뭔가 꽉꽉 채워버린 것 같아서요.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6/12/13 10:16
hagen / 뵘 아저씨는, 뭐랄까, 마치 잊혀지지 않고 찾아뵈야 하는 은사님같은 느낌이에요. 꽤 좋아하지만, 빠져들지는 못하겠는 느낌이랄까요. 어떤 것들은 너무 경외감을 주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런데 또 잊지 못하고 집어들게 되고...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6/12/13 10:22
levin님, 위에 945가 아니고 946입니다... 이글루는 덧글 수정이 안되어 가끔 귀찮네요....
(근데, 닭다리 뜯고 있는 사진이 의외로 정감있지 않습니까? 첨엔 좀 그랬는데 보면 볼수록 전 정이 가더라구요..... 꿈에도 나오고....--;)
Commented by 엘리 at 2006/12/15 12:47
음.. 딴 세상에 사시는 분들이군요.
왜 제 주위에는 피아노든 뭐든 연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는걸까요? 흑.
/
노다메 라이브 ~ 시디가 있길래 들어봤는데요. 두소절만에 틀리는 대목도 들어있구. 재밌었어요. ^^
노다메도 이제 슬슬 끝나 가네요. ......
/
올려주신 곡을 들어보려고 꾹 참고 있는데.. 무지하게 끊기네요.
이놈의 회사 네트웍!
Commented by Hagen at 2006/12/15 15:53
이 글 읽어서 그런지 어제 저녁엔 문득 슈베르트 5번 교향곡에 손이 가더라구요. 블롬슈테트/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연주로 들었는데 좋았습니다...지금도 1악장이 귀에 맴도네요...그림자님 요새 포스팅이 좀 뜸하신거 같아요...:)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6/12/16 05:56
엘리 / 저도 제 주위에 직접 연주하는 분이나, 하물며 저와 똑같은 취미를 지닌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습니다. ^^;; (인터넷공간을 제외한다면..)
그나저나 노다메 라이브 시디는 어떤가 궁금하네요. ^^

hagen / 요즘 이래저래 바쁘답니다. 보통 아이 재워놓고 포스팅을 하곤 했는데, 요즘은 몸이 많이 피곤한지 그것도 힘들더라구요. 애 재우면서 같이 자버리기 일쑤... 시간이 남으면 뭐든 읽어야 한다는 강박...비스름한게 좀 있구요..., 게다가 피아노가 생기고나니 그나마 남는 짜투리 시간엔 블로그 포스팅보다는 피아노치는 시간에 더 많이 몰두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Commented by Ernest at 2006/12/17 07:53
칼 뵘의 슈베르트는 왠지 모차르트스럽네요. 조금 덜 세련되어야 더 슈베르트다운건지..ㅎㅎ
굴드의 연주는 하핫 너무 재밌네요. 이건 피아노 솔로인지 성악 퍼포먼스(?)가 함께 하는건지 모를정도예요. 굴드는 피아노 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되면 노래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슈베르트는 도저히 손으로만은 표현이 어려웠나봐요.
Commented by 그림자놀이 at 2006/12/17 15:30
ernest / 그 말씀 듣고보니 그렇네요. 너무 세련된 느낌이군요. ^^ / 굴드의 허밍을 잘 즐기지 못하곤 했는데, 아예 이렇게 성악 퍼포먼스를 하니까 훨씬 듣기 좋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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